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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앞뒤 꽉 막힌 자린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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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판암 댓글 2건 조회 634회 작성일 23-04-17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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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뒤 꽉 막힌 자린고비


내가 과연 진정한 자린고비일까? 마흔여덟 해째 삶을 동행하며 고희의 중반을 넘긴 아내에게 벽창호 같은 옹고집의 영감탱이로 자리매김 되었나 보다. 평소 불요불급한 소비나 지출에 대해 콩켸팥켸 따지기는 했어도 터무니없이 허튼소리를 해대던 좁쌀영감은 결단코 아니었는데 말이다. 그럼에도 좀생이로 인식되어 쉬 마음을 열고 대화하기를 꺼릴 만큼 기피 대상의 존재였던 게 아닐까. 어찌되었든 심한 충격이 분명했다.


며칠 전의 일이었다. 계묘년 첫 달의 카드 사용 명세서가 우편함에 꽂혀 있었다. 무심코 개봉하여 대충 훑어보니 여느 달에 비해 백 만 원쯤 더 청구되었다. 그렇다고 시시콜콜 명세서를 점검하는 것은 썩 내키지 않았다. 식탁 위에 던져두었다가 땅거미가 내려앉을 무렵에 귀가한 아내에게 물었다. 대수롭지 않다는 듯 스스럼없이 대답했다. “필요한 손가방 하나 구입하는 과정에서 가지고 있던 현금이 부족해 일부를 카드로 결재했기 때문에 자기가 채워 넣겠다”고. 순간 둔기로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는 기분이었다. 


의외의 대답에 어리둥절한 채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다가 가까스로 마음을 진정시키고 다시 물었다. 평소 외출할 때 핸드폰이나 간단한 소지품을 넣고 다니던 손가방의 끈이 닳고 닳아 끊어져 폐기하고 불편해서 작은 가방을 하나 구입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라는 얘기였다. 그런 사실을 아예 눈치 채지 못했던 나는 누구일까? 결국 가방 없이 지내려 했지만 불편해서 구입했다는 부연 설명이었다.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낌새도 인지하지 못했던 내가 지아비 자격이 있는 걸까? 어떤 경우라도 문제가 발생하면 전후 사정을 밝히고 해결 방안을 모색했으면 좋았으련만 아내는 내 생각과 상당한 괴리가 있었다. 그 이면에는 소통이 순조롭지 않을 가능성과 시시비비를 따질 개연성 때문에 자기의 비자금을 허물어 구입하는 쪽으로 단안 내렸을 게다. 


단언컨대 부부의 연을 맺은 이후 아내를 무시하거나 함부로 대했던 적이 결코 없다. 그럼에도 대수롭지 않은 손가방 하나 구입하는 것조차도 남편에게 편하게 얘기를 못하는 아내의 심정을 되새겨봤다. 살림을 거덜 내거나 집을 팔아먹는 것도 아닌 사소한 결정도 맘대로 못하게 분위기를 조성했다는 자책감에서 변명의 여지가 없다.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아 “어떤 짝퉁(?) 가방인지 구경 한 번 해보자”고 너스레를 떨며 분위기를 바꾸려고 애를 썼다. 샐쭉해진 아내가 말했다. 자기는 “절대로 짝퉁은 구매하지 않는다”는 날 선 대답이 돌아왔다. 이리저리 회유해 문제의 가방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순간 그런 것 하나도 맘 놓고 구입할 수 없는 분위기를 만든 원죄를 반성하며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다. 고희 중반을 넘긴 여인네가 ‘그런 자유마저 유보당하고 사는 게 맞는 걸까’라는 관점에서 내 자신 스스로 여러 번 자문자답하며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입때까지 가정을 꾸려오면서 불필요한 소비나 지출은 철저히 금해야 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런 부분의 낭비는 최대한 아끼는 대신에 꼭 필요한 경우에 처하면 쩨쩨하게 벌벌 떨거나 좀팽이 같은 처신을 하는 등신이 되지 말자는 뜻에서 그리 대응했다. 하지만 가정이나 가족을 위한 필수적인 지출이나 병 치료 따위에는 아무리 큰돈이 필요하더라도 아끼려고 발버둥치거나 회피하려고 뭉그적거렸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이런 마음을 이심전심으로 공유한다고 믿었는데 나와 아내 사이에는 간극이 매우 컸던가 보다. 그런 까닭에 자기에게 필요한 손가방 하나 구입하는데 자존심이 상할 수 있는 문제라고 판단하고 쌈짓돈으로 해결하려고 작정했을 게다. 


생각할수록 미안하고 안쓰럽다. 어떻게 아내의 응어리진 마음을 풀어줄 수 있을까 고민을 거듭했다. 그렇게 며칠 끙끙대다가 아내에게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손가방 짝퉁 같으니 다시 한 번 구경하자”고. “자기는 어떠한 경우라도 짝퉁은 사지 않는다”는 얘기를 되풀이하며 자존심을 지키려했다. 자존심이 상했는지 안방에 들어가 들고 나오더니 “자! 잘 봐! 이게 짝퉁인가?”라며 코밑에 디밀었다. ‘한 발 뒤로 물러서는 척하며 확인하는 시늉’을 하면서 말했다. “짝퉁 사는데 고생했으니 대금 지불은 내가 하겠다”고 선언했다. 


내가 대신 대금을 지불하겠다는 얘기에 아내의 만면에 웃음꽃이 활짝 피어났다. 그러면서 손가방을 구입하는데 시나브로 여퉈 꽁꽁 숨겨두었던 쌈지를 풀어헤친다고 생각하니 속이 쓰렸는데 오래 묵은 체증이 일거에 말끔하게 씻겨 내려간 것처럼 시원해 날 것 같다고. ‘별 것도 아닌데 저리도 좋을까’라고 생각하다가 어이가 없어 웃음이 절로 번져나갔다. 설 연휴가 끝나고 출근하는 첫날인 오늘(1월 25일) 카드 대금이 은행 통장에서 인출되는 날이다. 아침 일찍 서둘러 입금시키고 돌아왔다. 한편 올해 내 첫 번째 바람은 아내의 건강이다.


수필과 비평, 2023년 4월호(통권 제258호), 2023년 4월 1일

(2023년 1월 25일 수요일)


댓글목록

장은초님의 댓글

장은초 작성일

선생님께서 잘못 하신 거 같아요 ㅎㅎ
 그럴 땐 사모님께 가방 또 하나 사 준다고 하시지 그랬어요?
사실 저도 남편이 은퇴하던 해에 루이비통 명품 가방을 하나 사 주더군요.
아무리 안 사겠다고 난리를 쳐도 무조건 하나 사줄테니  줄 때 받으라고 해서 샀어요.
그런데 별로 들고 다닐 곳이 없어요. 결혼식장 갈 때 빼고는 모셔놓는 백이 되었어요.
볼 때마다 돈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요.

선생님께서는 꽉 막힌  자린고비 절대 아니십니다. ㅎㅎ
늘 건강하세요 선생님.

김춘봉님의 댓글

김춘봉 작성일

저는 안양에서 살다가 집사람 고향이기도 한 김포 풍무동으로 이사하면서 공동 명의로 아파트를 구입했습니다.
무척 좋아하더군요.
직장 생활 하다가 정년 퇴직한 집사람은 저보다 훨씬 많은 연금을 받고 있습니다.
생활비는 집사람이 부담하고, 저는 관리비, 가스, 전기, 수도세를 책임지는 선에서 노후를 보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