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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좌우명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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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판암 댓글 0건 조회 533회 작성일 23-06-26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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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명 이야기


‘늘 자리 옆에 갖추어 두고 가르침으로 삼는 말이나 문구’인 좌우명(座右銘) 얘기다. 사람마다 취향이나 성격에 따라 정해지기 마련인 좌우명은 매우 다양하다. 내 경우 고등학교 시절 우연히 보강시간에 들어오셨던 선생님이 칠판에 쓰셨던 시구(詩句)가 그것이 되었다. 신기한 점은 그 분은 단 한 시간도 정규수업에 들어오셨거나 개인적인 교분이 전혀 없었던 때문에 인격적인 감화나 학문적인 존경의 대상이 아니셨다. 그럼에도 언뜻 스쳐지나가듯 보강으로 들어오셨다가 내 삶의 지표가 되는 소중한 일깨움을 남겨 주셨는데 지금은 성함도 잊어 무척 죄송할 따름이다.


돌이켜 생각하니 어느덧 60년이 지난 시절의 회상이다. 아마도 고등학교 2학년 어느 늦은 봄날 비가 내리는 날이었지 싶다. 개인적 사정으로 선생님 한 분이 결근하셔서 한 시간 동안 자습을 하게 되었다. 그때 1학년의 국어를 담당하시던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비 내리는 창밖에 시선을 고정한 채 칠판에 매월당(梅月堂) 김시습(1435~1493)의 시(詩)인 ‘사청사우(乍晴乍雨)’의 한 구절(句節)인 열네 자(字)를 칠판에 한자(漢字)로 써 놓았다. 그리고 차근차근 설명해 준 뒤에 각자 취향에 따라 자유학습을 하도록 시간을 주었다.


花開花謝春何管(꽃이 피고 지든 봄이야 알 리 없고)

雲去雲來山不爭(구름이 가고 오던 산은 탓을 하지 않네)


별다른 의미 없이 그 시구(詩句)를 노트에 꼼꼼하게 적어두었다. 언젠가 다시 새겨 볼 수도 있으려니 생각하고 말이다. 그 후 어쩌다가 다시 들여다보니 예사롭지 않은 시구로 여겨졌다. 그러다가 어느 결에 가슴속 깊이 똬리를 틀면서 자연스럽게 좌우명이 되었다. 원래 시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었을지라도 시시콜콜 따지지 않기로 했다. 대신에 ‘세상이 어찌 돌아가더라도 공연히 휩쓸려 부화뇌동하지 말고 내 할 일만 하고 살자’는 정도의 의미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런 이유에서 평소 남들이 어떤 행동을 할지라도 내 길이나 몫이 아니면 오지랖 넓게 참여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이런저런 이유를 내세우면서 남의 탓을 하지 않는 삶을 꾸리려고 신경을 써왔다.


민족상잔의 전쟁인 6.25의 휴전 무렵부터 시작했던 배움의 길은 초등학교를 시작으로 대학원 박사과정까지 20년 이상 지속되었다. 그동안 수많은 선생님과 교수님들에게 교육과 지도를 받았다. 그 장구한 과정에서 학문적인 배움 못지않게 인격적인 측면의 감화도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많고 컸었다. 그렇게 직접적인 영향을 많이 준 은사들의 말씀이나 가르침 중에 천금 같은 내용을 좌우명으로 삼았어야 하지 않을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보강시간에 처음 대했던 선생님이 알려주셨던 시구가 나의 좌우명이 되었다는 사실을 두고 이르는 독백(獨白)이다.


좌우명으로 자리 잡게 된 시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해 보고 싶다는 욕심 때문이었으리라. 지은이인 김시습의 일생에 대한 다양한 자료를 찾아 다각도로 분석해 보기도 했다. 아울러 해당 시(詩)인 “사청사우(乍晴乍雨 : 잠시 개었다 비 내리고)” 전문도 틈이 날 때마다 정독하며 음미하며 곱씹어 보기도 했다.



잠시 개었다 비 내리고 내리다 다시 개니(乍晴乍雨雨還晴) 

하늘의 이치가 이럴진대 인간 세상 어떠하랴(天道猶然況世情)

나를 높이다가 어느 결에 나를 헐뜯고(譽我便是還毁我) 

공명을 피하더니 돌연 공명을 구하는 구나(逃名却自爲求名)

꽃이 피고 지든 봄이야 알 리 없고(花開花謝春何管)

구름이 가고 오던 산은 탓을 하지 않네(雲去雲來山不爭)

세상 사람들아 이 말을 부디 새겨 두시라(寄語世人須記認)

즐거움만을 평생 누릴 곳은 없다는 것을(取歡無處得平生)


청교도적인 삶과 다르게 변변치 못한 처신을 했던 때문일까? ‘쓸데없이 오지랖 넓게 나서서 덤벙대거나 거친 세파에 휘둘리며 나를 잃는 어리석음을 피해 오로지 내 길을 묵묵히 가리라’고 다짐을 했었다. 딴에는 다부지게 결기를 다졌었음에도 돌이켜보니 아무것도 이루거나 얻은 게 없는 빈손으로 허허롭다. 결국 매사에 맺고 끊음이 야무지지 못하고 생각이 물러 터져 어우렁더우렁 어울려 지동지서하다가 뭐 하나 제대로 얻거나 건지지 못한 채 엄벙덤벙 살아온 업보이리라. 이런 현실의 처지에서 내 자신에게 묻는다. 이제라도 길이 아니면 가지 않고 도리가 아니면 외면하려고 결기를 다지며 나잇값을 할 자신이 있는지 말이다. 문제는 보이는데 해법이나 가야할 길 쪽은 칠흑같이 깜깜해 더더욱 안타깝고 곤혹스럽다.


경남문학, 제143호, 2023년 여름호, 2023년 6월 5일

(2023년 3월 12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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