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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익선관에 담긴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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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판암 댓글 1건 조회 366회 작성일 23-07-10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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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선관에 담긴 의미


조선시대 왕이나 세자를 비롯한 세손이 머리에 쓰던 관(冠)인 익선관(翼善冠) 얘기다. 이 시절 조정에서 관료들이 집무 시에 사모관대(紗帽冠帶) 규정에 따라 갖춰 입었던 관복(官服)과 관모(官帽)로서 문무(文武)와 품계(品階)를 구별해 위계질서를 확립했다. 하지만 관료들과 달리 왕이나 세자를 비롯한 세손의 경우는 무늬와 색상은 다소 다를지라도 의복은 상복(常服)으로 곤룡포(袞龍袍)를 입었고 머리에 관은 익선관을 썼다. 여기서 익선관은 매미의 날개를 본 따서 만든 관인데 특히 왕이 쓰는 익선관은 매미의 양쪽 날개를 하늘로 향하게 만듦으로써 위엄(威嚴)있어 보이도록 했다는 사실이 눈길을 끈다.


관료들은 관모, 왕은 익선관을 썼던 이면에는 중국의 진(晉) 나라 때 육운(陸運)이 한선부(寒蟬賦)에서 일렀던 “매미의 오덕(五德)을 망각하지 말고 청렴하고 강직하게 선정을 베풀면서 백성을 다스리라는 위민(爲民) 철학이 담겨” 있단다.


원래 매미는 길게는 7년 동안 땅속에 있다가 성충이 되어 밝은 세상에 나와 선탈(蟬脫)한 뒤에 기껏해야 10여일 안팎을 살고 미련 없이 짧은 생을 마감한다. 하지만 그 생김새나 행동거지로 볼 때 나무라거나 흠 잡을 데가 없다는 맥락에서 일찍이 진나라 시인이었던 육운이 아래와 같은 오덕을 지녔다고 칭송했다. 첫째로 매미의 입이 곧게 뻗은 모양이 갓끈 늘어진 것을 연상시켜 이는 학문을 이르고(文), 둘째로 맑은 이슬만 먹고살기 때문에 청빈하다는 것이고(淸), 셋째로 사람이 먹는 곡식은 손대지 않으니 염치가 있다는 것이고(廉), 넷째로 굳이 집을 짓지 않고 나무 그늘에서 살기 때문에 검소하다는 것이고(儉), 다섯째로 철에 맞춰(오고 가며) 욺으로써  절도를 지키니 신의가 있다(信)는 것이다. 결국 이들을 요약할 때 매미는 “문(文) • 청(淸) • 염(廉) • 검(儉) • 신(信)” 따위의 다섯 가지의 덕을 갖췄다는 지적이다.


육운이 지적했던 매미의 오덕 영향 이었을까. 전통적으로 매미에 대한 생각은 무척 관대했던가 보다. 그런 예의 한 가지이다. 고려 때 이규보(李奎報)가 지은 방선부(放蟬賦)*에 나오는 내용이다.  거미줄에 걸려 버둥대는 매미를 날려주려 하는데 옆에서 뜨악하게 지켜보던 이가 “둘 다 똑 같은 미물(微物)인데 매미를 살려주면 거미는 굶어 죽는데 왜 풀어주느냐”고 이유 있는 항의를 하자 이렇게 답하더란다. “거미는 성질이 탐욕스럽고/ 매미는 심성이 밝은지라/ 배 부르려는 욕심은 채워지기 어려우나/ 이슬 먹는 창자야 무슨 욕심이 있을 것인가/ 욕심 많고 더러운 놈이 맑은 놈을 박해하니/ 내 어찌 동정이 없을소냐”라고 답했단다. 같은 하찮은 미물임에도 매미에게 잔뜩 기울어진 속내가 확연하다. 


매미의 오덕을 각별하게 여겼던 덕치(德治)의 일환이었을까. 조선시대 일평생 벼슬의 언저리에도 가보지 못했던 이름 없는 백성들에게도 혼례식에서만은 관료들의 복식을 갖춰 입는 것을 비롯해서 궁궐 여인들이 착용했던 원삼(圓衫) 족두리 차림으로 혼례를 치르도록 허했다. 다시 말하면 평민들로 혼례 때 신랑은 사모관대를 하는가 하면 신부의 경우는 궁궐의 여인네들이 가례(嘉禮) 때에 차려 입었던 원삼 족두리를 착용하고 예식을 치르도록 배려하는 은전을 베풀었다.


우리의 경우 급진적인 산업화 과정에서 경박한 물질문명이 모든 것을 압도했던 때문일까. 타고난 그릇에 비해 지나치게 과다한 이룸 때문인지 일궈낸 부(富)나 거머쥔 권력에 비해 인품이나 덕(德)이 턱없이 모자라는 함량 미달인 정신적 가난뱅이들이 부지기수이다. 이런 부류를 비롯해서 영혼이 피폐해진 이 시대의 모두가 진부하다고 여길지도 모르는 ‘매미의 오덕’을 되새김질하는 진솔한 자성과 성찰이 절실한 작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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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선부(放蟬賦) : 매미를 놓아 주며 부른 노래


춘하추동, 제2호, 2023년 6월 10일 

(2023년 1월 30일 월요일)


댓글목록

김춘봉님의 댓글

김춘봉 작성일

왕이 쓰는 익선관과 매미의 양쪽 날개가 관련이 있다는 이야기가 흥미롭습니다.

저는 며칠 전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교수님 기사를 발견했습니다. 
수필가 '등단 비용' 50만 원, 결국 포기했습니다.
<오마이뉴스>에 글을 쓰기 시작한 건 보름 정도 되었다.
처음의 기사는 생나무에 올라갔다가 삭제되었고 두 번째 기사는 잉걸, 세 번째는 버금 등급을 받았다.
차차 올라가고 있는 등급과 빠른 피드백에 글 쓰는 재미가 점점 더해지고 있다. - 21.12.31 16:43

저는 <오마이뉴스> 생나무에 12회까지 글을 올려 모두 채택 되었지만,
제가 신청한 연재 란에는 저의 사진과 작가 소개만 있을 뿐 내용을 볼 수 없어서,
그동안 올린 글 모두 삭제하고 더 이상 글을 올리지 않기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