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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글 직박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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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윤복순 댓글 1건 조회 315회 작성일 23-08-05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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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박구리

윤복순

 

남편이 10시도 못 되어 집에 왔다. 요즘 2주 넘게 포도밭의 새 때문에 고생을 한다. 7월은 포도가 익어가면서 몸을 키우는 달이다. 우리 포도도 군데군데 색이 들고 있다.

단내를 맡은 새가 어디로 들어왔는지 하우스 안에 있다. 하우스 15동인데 연동도 있고 각각도 있다. 꼭 연동인 곳에 있다. 1동에서 쫒으면 2동으로 가고 2동에서 쫒으면 1동으로 간다. 하우스길이도 제일 길다.

지지난 일요일 태양광 밭의 개망초가 내 키만큼 자라 아들네 딸네가 풀 깎으러 내려왔다. 더위 때문에 꼭두새벽에 나갔다. 나는 손자들 아침밥 때문에 가지 않았다. 10시 조금 넘어 끝났다고 아들한테 전화가 왔는데 12시가 넘어도 오지 않았다.

하우스에 새가 들어와 장정들 있을 때 잡기로 했단다. 전에도 들어와 쫒아냈는데 또 들어온 것이다. 그렇다면 하우스에 문제가 있다. 반 하우스이고 양옆은 모기장으로 막았다. 10년도 넘다보니 모기장이 낡았다. 잘 꿰맨다고 꿰맸어도 불량이 있는가 보다. 열 사람이 지켜도 도둑 하나 못 잡는다고 했던가.

그 후로 남편이 날마다 새와의 전쟁이다. 새들은 잘 익어가는 포도를 공략한다. 한 송이를 끝장내는 게 아니라 이놈저놈 한두 알씩 찍어 놓는다. 그러면 초파리가 우르르 몰려들어 그 송이는 물론 옆의 송이까지 다 망쳐 놓는다.

비가 주룩주룩 쏟아지던 날, 새만 아니면 남편이 하루 쉬고 싶다고 한다. 날짜 맞춰 물주기만 하면 포도는 알아서 잘 익어가니 그나마 7월이 조금 쉴 수 있는 달이다. 그런데 새 때문에 매일 밭에 가야한다.

지난 일요일 오랜만에 나도 밭에 갔다. 남편은 스프링클러만 틀어주면 된다고 했다. 나는 특별히 할 일이 없어 쉴까 했는데 내가 같이 가면 포도에게 위로와 격려가 된다고 해서 따라 나섰다. 농사가 왜 할 일이 없겠는가. 밭둑의 풀을 깎았는데 철쭉 사이는 깎이지 않아 그것들을 손보고 이었다.

1동에 새가 들어왔다고 큰소리로 부른다. 호기롭게 내쫒지 말고 잡자고 했다. 할아버지 할머니 둘이서 이리 몰고 저리 몰고 다녔다. 포도 잎이 무성해 줄기를 묶어 놓은 줄에 앉거나 잎 사이에 숨으면 보이지도 않는다.

처음엔 뛰거나 손뼉을 치며 훠이훠이 몰며 새의 위치를 알아내고 쫒아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새는 지치지 않고 나만 지쳐갔다. 걸음이 느려지고 줄 흔드는 힘도 약해 새가 어디쯤에 있는지 감도 못 잡았다.

두 시간 넘게 새와 숨바꼭질을 하다 보니 부아가 났다. 다리도 아프고 기운도 빠지고 종아리에 알통이 박힌 것 같다. 잠시 쉬면서 어디로 들어갔을까 온 하우스를 이 잡듯 뒤졌다. 바람이 불 때 모기장 밑단이 들리면서 들어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그물망을 덧대 꿰매기로 했다.

무릎을 아껴야 해서 쪼그리고 앉는 것은 금물이다. 장맛비가 오락가락 해 바닥이 많이 젖어 엉거주춤 서서 하다 보니 허벅지가 터져나갈 것 같다. 모기 하나 못 들어가게 손을 보고 또 새를 몰러 들어갔다.

한나절 해 보니 이 사람들 아무것도 아니라고 새가 생각했는지 몇 번을 왔다 갔다 해도 새의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 옳거니 나갔구나. 물주기가 끝나야 집에 갈 수 있으니 관리사에서 상자들을 쭉 펴놓고 누워 쉬기로 했다. 살짝 잠이 들었다.

새가 쪼아 놓은 포도는 보이는 족족 다 따내는데 1동에 또 쪼아놓은 게 보인다고 새가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조금 쉬었으니 기운을 내 새를 몰고 다녔다. 새는 그 사이 포도를 얼마나 먹었는지 움직임이 더 날래졌다. 약이 바짝바짝 오른다. 비가 그치고 해가 나니 하우스 안은 급격히 더워진다. 체력 급 저하다. 기어이 잡고 말겠다던 자신감은 어디로 출장을 가고 새야 새야, 잡지 않을게 나가만 줘라. 사정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새와 씨름하다 보니 새 소리가 환청처럼 들린다. 이쪽인가, 저쪽인가. 전봇대에 새가 앉아있다. 하우스 안의 새와 부부인가 보다. 그곳에 앉아서 우리들의 상황을 지 짝꿍에게 다 알려준 모양이다. 할매 할배 이쪽으로 온다. 빨리 뒤로 가. 반대쪽 포도나무 위로 살짝 올라가봐 그러면 잘 안 보여, 등등

날아다니는 새와 걸어 다니는 나, 누가 이길까. 처음부터 승산이 없는 싸움이었다. 잡아 죽이겠다는 부아는 다 어디로 가고 제발 나가주기만 하면 황송 감사하겠는데 나가질 않는다. 한 발 한 발 띄기도 힘이 든다. 기진맥진이다. 할머니를 이 만큼 골탕 먹이며 하루 종일 잘 놀았으면 너희 집으로 돌아갈 때도 되지 않았니. 잡아야겠다고 맘먹은 것 사과할게 제발 좀 나가줘라. 노인네들 불쌍하지도 않니.

이 새는 직박구리다. 나무에서 생활하며 땅에는 거의 내려오지 않는다. 여름에는 암수가 함께 생활하고 곤충을 잡아먹는다. 열매를 워낙 좋아한다 하더니 벌레 천지인 이 여름에도 하우스에서 나가질 않는다. 뿐만 아니라 암수가 같이 있는 걸 좋아하니 분명 전봇대의 저놈도 하우스 안으로 들어올 것이다.

우리는 흔히 멍청한 사람에게 새 대가리라고 한다. 오늘 보니 새 같이 영리한 게 없다. 그 영리한 머리로 내 말을 알아들었으면 좋겠다. “빨리 나가 벌레 잡아먹으면서 단백질 보충해야지, 포도만 먹으면 비만에 당뇨 걸린다.” 무료 건강 상담을 해 줄 때 잘 들어. 내 말을 콧등으로 들었는지 나가지 않았다.

남편 혼자서 이리 몰다 저리 몰다 성질이 날대로 난 모양이다. 오죽하면 밭에 있다가는 죽을 것 같아서 그냥 왔다고 하겠는가. 이놈의 직박구리를 어떻게 할까. 또 아들딸을 내려오라고 해야 하나.

2023.7.20

 

댓글목록

한판암님의 댓글

한판암 작성일

포도밭 비닐하우스는 무척 더울 것임에도 불구하고, 달갑지 않은 직박구리의 무단 침입과 행패.... 그런 녀석을 쫓이 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건만  아랑곳하지 않고 이족 저쪽으로 피해 날아다닐 터이니 얼마나 얄입고 원망스러울까요.

언젠가 과수원하던 친구가 새들이 하도 많이 과일을 쪼아 놓아 죽을 지경이라고 투덜대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특히 까치떼의 공격은 무서울 정도로 피해를 많이 남긴다던 얘기가 떠오르네요.

그후 직박구리의 운명이 어떻게 되었을지 무척 궁금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