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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몸이 쉬라면 쉬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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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래여 댓글 2건 조회 147회 작성일 23-11-16 11:17

본문

몸이 쉬라면 쉬어야지.



 컴퓨터 앞에 앉았다. 몸이 아프다는 이유로 게으름을 피웠다. 게으름이 아니다. 농부와 딸은 감산에서 단감 따 들이고 나는 집에서 포장해서 택배 부치고 진땀 빼고 저녁이면 끙끙 앓았다. 수건이 흠뻑 젖도록 땀을 흘렸다. 희한한 일은 진통제 털어 넣고 잠을 자고 나면 또 움직여졌다. 이러다 죽겠구나. 어지러운 꿈을 꾸다 식은땀을 흘리며 깨기 일쑤였다. 만신이 아팠다. 일상에 의욕도 없고 밥 차리고 먹는 것이 고역이었다. 딱 죽었으면 좋겠는데 죽지도 않고 시름시름 앓았다.


 결국 병원에 갔다. 이런 저런 검사를 했다. 쯔쯔까무시란다. 의사는 약 두 첩을 주며 내일 또 병원에 오란다. 다음날은 치료제 일주일 분을 주고 그 새 또 병원에 오란다. 약 한 첩을 먹고 나니 띵하던 머리도 어질어질 하던 정신도 조금 맑아졌다. 시력이 뚝 떨어져 글자가 안 보였다. 의사는 무조건 푹 쉬란다. 농부는 방치하다 병을 키웠다고 눈총이다. 딸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누워 있으란다. 일이 눈에 보이는데 누워있는 것이 더 고역이다. 주문 들어온 것 정리하고 포장하는 작업도 만만찮다. 300주가 넘는 단감 농사지을 때는 밥 먹을 틈도 없었다. 허리에 복대차고, 무릎 보호대 차고 나부댔다. 저녁이면 파김치가 되어 목욕탕 가기 바빴다. 거기에 비하면 새 발의 피지만 나이 듦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때는 젊었기에 견뎠지 싶다.


 창고에 선별해둔 단감을 파먹는 불청객이 있다. 까마귄지, 산비둘기인지, 쥐인지 모르겠다. 맛나고 좋은 것만 흠을 낸다. 미리 그들이 먹을 것을 못난이 단감, 홍시를 구석구석에 놓아둔다. 같이 먹고 살아야지. 단감 농사지은 이래 이렇게 굵고 맛난 단감은 처음이지 싶다. 농사 잘 짓는다고 소문난 농부도 놀란다. 자잘한 단감이 없으니 일도 수월하다. 봉지에 담아 싸게 팔 못난이도 없다. 단감이 굵으니 못난이도 굵다. 나는 굵고 맛있고 비싼 단감 먹어보세요.’라고 광고한다. 단감 받은 분들이 대만족이란다. 너무 맛있어서 금세 먹어치웠다며 재 주문해주시고 여기저기 선물도 하고 광고도 해 주는 덕에 판매도 무난하다. 지난해에 비할 수는 없다. 가격을 올렸으니 그럴 수밖에.


 남은 것은 저장해 놨다가 겨울에 도매상에 올리면 된다. 물량이 적어서 고생도 덜하게 되었다. 겨울에 난달에서 단감 포장작업 하려면 손 시려. 발 시려. 감기 드실라.’ 동요를 웅얼거리게 되는데. 올해는 물량 부족으로 고생을 덜하게 생겼다. 농부와 딸이 손발이 잘 맞아 일처리는 수월하게 끝나갈 것 같다. 내일 마지막 낱개 줍기 끝나면 된서리가 와도 좋고, 얼음이 얼어도 상관없다. 날씨가 변덕을 부리니 우리 동네 단감 농가도 일찌감치 마무리를 하는 중이다. 알감이 비싸서 그런지 서둘러 따서 도매상으로 올린다. 저장하는 것보다 바로 파는 게 이득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시세는 알다가도 모른다.


 포장한 단감이 거의 팔려 나갔다. 재주문도 꾸준하다. 우리 집 단감을 주문해주는 분들이 고마워서 나도 좋은 것을 보낸다. 예를 들어 하루치 단감을 따 들여 선별했을 때 고객이 부모님께 보낸다며 35과를 주문했는데. 35과가 다 나가고 30과가 남았을 때는 30과를 보냈다. ‘아버님이 태어난 이래 이처럼 굵고 맛난 단감 처음 먹어본다.’ 하더라며 고맙다는 문자를 받으면 나도 뿌듯하다. 돈보다 정이 우선이다. 단감 수량이 적어 내 마음대로 선물을 못해 마음 아플 따름이다. 선물이란 이름으로 보내고 싶은 분이 많은데. 다 챙기다간 본전도 못 건질 판이다.


 아무튼 세상에 공짜는 없다. 나누면 나누는 만큼 들어오는 것도 많다. 진리다. 선하게 살면 선한 뒤끝이 있다는 말을 믿는다. 농부는 내가 아프니 조금 짓는 단감 농사도 포기해야겠단다. ‘당신 소일거리 없으면 엉뚱한 일을 벌이잖아. 그냥 단감농사 몇 년 더 짓자. 딸이 와서 도우니 좋고 퍼낼 게 있으니 더 좋기만 하네.’ 단감농사 지을 때는 아까운 줄 모르고 퍼낼 수 있지만 단감농사도 포기하면 퍼낼 게 없어 어쩌나. 지레 퍼낼 것 없을까봐 걱정한다. 이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는데. 나는 아직 욕심을 못 버린 것일까.


 아무튼 몸이 아프니 만사무심해서 좋다. 그냥 느긋하게 빈둥거리는 것도 괜찮다. 사실 노는 것보다 일하는 것이 더 낫다. 일에 심취하면 몸의 통증을 덜 느끼니까. 시간도 빨리 가고 좋다. 농부랑 딸이 작업장에 못 들어서게 한다. ‘이보시오들, 일하는 게 쉬는 거요. 힘들면 들어갈 테니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두소.’ 성질 버럭 내고 작업장에 앉는다. 쯔쯔까무시, 참 고약스러운 병이다. 시골에서 진드기랑 친하게 지낼 수밖에 없는데. 이번에는 딱 걸렸다. 왤까. 독감 앓고 면역성이 떨어져 있던 차에 몸을 무리하게 움직였으니 벌 준 거다. 쉬라고 할 때 쉬라는 뜻이리.


 

댓글목록

한판암님의 댓글

한판암 작성일

쓰쓰가무시병 매우 위험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래도 조기에 발견하여 병원치료를 적기에 받으셨으니 천만다행 입니다. 모든 농사가 그렇겠지만힘든 감 농사 수고가  많네요. 나이가 들면 한 해 한 해 지나면서  느끼는 피로는 다른가 봅니다. 늘 아직은 생생하다고 자부해 왔는데 다음달 지나면 팔십의 문턱을 넘는 때문인지 거의 매일 다니는 등산길도 힘들어 허우적이는 내가 싫은 지금이랍니다.

박래여님의 댓글의 댓글

박래여 작성일

벌써 팔십요? 선생님, 제겐 늘 중후한 칠십 대 초반의 모습만 기억납니다.^^
요즘 팔십은 청춘이래요. 저는 칠십 문턱 밑인데도 몸과 마음은 팔구십 노인 같아요.ㅋ
세월 가는 것 잡을 수 없고, 따라 늙어가는 모습 역시 자연스러운 일인걸요.
선생님, 건강 잘 챙기시고 편안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