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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곡학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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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판암 댓글 0건 조회 45회 작성일 24-05-06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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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학아세


학자에 대한 부정적인 용어이다. 그 대표적인 개념이 어용학자(御用學者)와 폴리페서(polifessor : 政治敎授)*가 아닐까. 여기서 어용학자란 “권력자의 비호를 받고 그에게 아부하기 위하여 그의 정책을 찬양하거나 정당화하는 학자” 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권력자나 권력기관에 영합하여 줏대 없이 행동하는 것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한편 폴리페서는 “국내에서 쓰이는 현대 사회의 신조어 중 하나로서 교수가 정치에 기웃거리면서 정계 입문을 노리느라 자기 본분을 잊게 된 경우”를 일컫는다. 이들 두 가지 개념에 대한 정확한 정의는 논란점이 상당히 많다. 이 부류들은 언필칭(言必稱) 학문을 한다는 학자로서 본분을 잊고 학문을 빙자하여 권력에 아부할 가능성이 다분한 부류로 간주된다. 이처럼 ‘학문을 굽혀(曲學) 세상에 아첨하는(阿世) 것을 곡학아세(曲學阿世)라고 한다.


곡학아세는 결국 “학설을 굽혀(曲學) 세상 속물들에게 아첨(阿世)”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사사로운 출세욕 때문에 학문의 정도나 신념을 저버리고 가치관을 변절하면서 타협하거나 아부하는 행태’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통용되고 있다. 원래 이 말은 한(漢)나라 시절 무제(武帝) 때 성품이 강직한 학자로 알려진 원고생(轅固生)이 공손홍(公孫弘)에게 했던 말에서 비롯되었다. 이러한 유래가 전해지는 출전(出典)은 중국 사마천의 사기(史記) 유림열전(儒林列傳)이다.


원래 원고생은 벼슬살이를 하다가 어지러운 정쟁에 휘말려 벌을 받고 초야에 은둔하던 노학자이자 원로 정객이었다. 그런데  한무제(漢武帝)가 즉위하면서  원고생을 다시 조정으로 불러들여 현량(賢良) 벼슬을 제수했다. 인간 세상인 때문일까. 그 옛날에도 남을 헐뜯고 시기하며 모함하는 족속들이 즐비했던가 보다. 원고생의 재등장에 아첨과 모함을 일삼는 벼슬아치들이 벌떼 같이 들고 일어나 “원고생은 노쇠했다”며 부당하다고 물고 늘어지며 온갖 이유를 쏟아냈던 모양이다. 이에 황제는 원고생의 벼슬을 철회했다. 그 때 그의 나이가 아흔에 가까웠다고 한다.


원고생에게 다시 ‘현량’ 벼슬을 내리던 자리에서 공손홍이라는 사람도 함께 임명장을 수여했던 것 같다. 그런데 공손홍이라는 사람은 재목의 됨됨이나 학문의 수준 역시 내세울 바가 없었을 뿐 아니라 원고생을 우습게 여기고 깔보면서 오로지 출세욕에 사로잡혔던 신출내기에 불과했다고 한다. 어찌 되었든 둘이 함께 임용장을 받던 자리에서 공손홍은 곁눈질로 고고한 자태의 원고생을 봤다(눈치를 봤다)고 한다. 이 때 원고생은 나이 어린 풋내기에게 다음과 같은 조언을 했다는 기록이다.


/ 공손 선생은 바른 학문에 진력하여 직언을 올리고(公孫子務正學以言 : 공손자무정학이언) / 학문을 굽혀서(曲學)  세상에 아첨하지 마시게(無曲學以阿世 : 무곡학이아세) / 


 

위에서 ‘곡학아세’라는 성어가 탄생했다. 이 충언을 듣고 난 이후 공손홍은 많이 반성하고 진솔한 사람으로 변했고 원고성을 흠모하게 되었다고 한다. 한편 이 뒤부터 제(齊)나라에서 시경을 연구하고 강론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원고생의 철학과 가치관과 궤(軌)를 같이 했다고 전해진다. 따라서 결국 제나라 출신 시경을 연구했던 전부가 원고생의 제자였다는 얘기도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다.


일제로부터 해방이 되고 건국 이후 수많은 법과 제도가 생겨났다가 사라지기가 되풀이 되고 있다. 그들 중에는 탄생하지 말았어야 할 악법이나 제도가 숱하게 많았었고 현재에도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그들 하나하나에 대하여 이론적인 근거를 제시하고 구체적인 내용을 조목조목 정리했던 문구는 과연 누구의 몫이었을까. 그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소위 그 분야를 전공했던 학자였다는 사실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으리라. 따라서 못된 악법이나 제도에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부작용(side effect)이나 치명적인 독소의 위험성이 내포될 가능성을 몰랐을 리 만무하다. 그런 문제점을 예측하면서도 권력자의 비위를 맞추거나 아부하려는 의도나 허무하고 부질없는 권력 혹은 탐욕스런 이득을 취할 마음이었다면 그것은 분명 ‘곡학아세’에 해당한다.


그렇다고 학자로서 본연의 영역인 연구와 봉사 그리고 교육에 출중한 성과를 내면서 자기 연구 관련 분야의 법이나 제도를 위시해 정책 입안과 수행에 참여한다고 무조건 지탄받거나 척결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리라. 문제는 학자로서 변변한 연구실적은 물론 사회봉사나 후진교육 따위는 뒷전이고 오로지 자신의 영달을 위해서 정치판이나 행정부 주위를 하이에나처럼 어슬렁거리는 족속들은 오갈 데 없는 ‘곡학아세’의 전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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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폴리페서(Polifessor : 政治敎授)는 Poli(Poli tics)와 fessor(Pro fessor)의 합성어이다.


수필과 비평, 2024년 5월호(통권 271), 2024년 5월 1일

(2024년 3월 3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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