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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탁란을 지켜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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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래여 댓글 7건 조회 1,179회 작성일 20-08-19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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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란을 지켜보며.

       박래여



 

  요근래 딱새 부부와 뻐꾸기 아기 새를 보면서 생각이 많아졌다. 탁란, 다음의 백과사전에는 이렇게 나와 있다. ‘둥지를 짓거나 알을 품거나 새끼를 기르는 등의 행위를 다른 개체에 맡기는 동물의 습성. 원래는 조류(鳥類)에만 쓰던 용어다.’ 그 탁란이 사람에게도 적용가능하다. 자식을 낳기만 하고 기르지 않는 부모의 행위도 이에 속하지 않을까. 탁란 하면 뻐꾸기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 뻐꾸기 아기 새가 우리 집 창고에서 건강하게 몸집을 불리고 있다. 이삼일 사이에 친부모를 찾아 날아갈 태세다. 그것도 모르고 딱새 부부는 뻐꾸기 아기 새의 배를 채우려고 잰걸음 친다. 

 

 뻐꾸기 암컷은 봄철이 되면 딱새나 곤줄박이, 개개비, 오목눈이 등, 작은 새의 둥지에 숨어든다. 작은 새가 낳아 놓은 서너 개의 알 중에 한 개를 물어내다 치워버리거나 먹어버리고 그 알 대신 자기 알을 하나 끼워 놓는다. 인간으로 치면 업둥이다. 아이를 낳아 부잣집 문 앞에 두고 가는 행위와 닮았다. 작은 새의 알과 뻐꾸기 알은 색깔은 비슷해도 알의 굵기는 다르다. 작은 새는 개수만 확인되면 의심을 않고 자기가 낳은 알인 줄 알고 품는다. 어떤 새는 자기 알보다 큰 알이 있으면 남의 알인 줄 알고 깨어버리기도 한다는데 그런 영리하고 눈썰미 좋은 작은 새는 드문 모양이다.



 탁란은 뻐꾸기의 종족번식 방법이다. 알에서 깨어난 뻐꾸기 아기 새는 자기를 태어나게 해 준 작은 새 부부의 진짜 아기 새를 사정없이 둥지에서 밀어내 죽도록 하고 혼자 남아서 호의호식한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자식인 줄 모르고 딱새 부부는 지극정성으로 뻐꾸기 아기 새를 길러낸다. 산골 살이 수십 년 만에 직접 경험한 탁란은 나를 슬프게 한다. ‘어떻게 저럴 수 있지?’ 자기보다 서너 배는 큰 덩치를 제 새낀 줄 알고 밤낮없이 먹이를 물어 나르는 것도 모자라 침입자라도 있어 제 새끼를 해칠까봐 저리도 경계심이 투철하다니.



 문득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구하라 법을 생각한다. 가수 겸 탤런트를 하다 자살한 구하라나 소방관으로 재직하다 자살한 여성소방관의 유산을 놓고 벌어진 법의 잣대는 불편한 진실이다. 구하라 법은 국회를 통과해서 말뚝을 박아둬야 한다. 가슴으로 낳은 자식을 기르는 부모도 많은 세상이다. 자식을 낳아 버리고 떠났던 부모가 그 자식이 죽자 기다렸다는 듯이 유산을 차지하는 것은 잘못 되어도 한참 잘못 된 법의 잣대 아닐까. 재산에 눈멀어 헌신짝처럼 버렸던 자식을 찾는 부모는 양심도 없다. ‘나는 인두겁을 쓴 짐승이요.’ 스스로 주홍글씨를 달고 살아도 모자랄 판이다. 아무리 돈에 눈이 멀어도 나설 자리인지 아닌지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 양심을 저당 잡힌 모정에 분노가 인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법은 인간에게 편리하도록 인간이 만든 잣대다. 그 법에 구하라 법은 꼭 있어야 할 법이다. 왜냐면 자식을 낳아만 놓고 그 자식을 버리는 비정한 인간 때문이다. 물론 피치 못할 사정이야 누구에게나 있고 구구절절 말 못하는 사연도 있겠지만 자식의 장래를 생각한다면 그런 몰염치한 짓은 하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어린 자식에게 부모는 둥지요 의지 처다. 하루아침에 부모의 이기심으로 인해 그것을 빼앗겨버린 자식은 정신적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자라야 할 것이다. 그렇게 살던 자식이 죽었는데 유산을 받기 위해 나선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법의 규제가 꼭 필요한 사안이라고 본다.



 창고의 딱새 부부는 저보다 서너 배 큰 뻐꾸기 아기 새의 배를 채우느라 비쩍 말랐다. 두 마리가 쉴 틈도 없이 번갈아가며 먹이를 물어다 뻐꾸기 아기 새의 주홍색 꽃 같이 벌린 입에 넣어준다. 가까운 곳에 서서 날아보라고 종용하기도 한다. 제 새끼 다 잡아먹은 원수 새낀 줄도 모르고 지극정성이다. 가까운 산그늘에서 뻐꾸기가 운다. 어미 뻐꾸기는 멀리 가지 않고 딱새의 둥지 곁을 맴돈다. 희한하게 올해는 지붕과 가까운 나무그늘에서 뻐꾸기 울음소리를 자주 들을 수 있어 신기했었다. 알고 봤더니 딱새의 둥지에 제 알을 낳아 놨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집 뻐꾸기 아기 새 부모는 그래도 구하라나 여성 소방관의 어머니보다 낫다고 본다. 남의 둥지에 자식을 넣어 키우지만 긴 울음으로 새끼에게 자신이 곁에 있다는 사실을 수시로 알려주는 것 같아서.



 아무리 생각해도 딱새 부부가 불쌍하다. 보통 딱새는 세 개의 파르스름한 알을 낳았다. 해마다 창고의 공구 통 옆과 우체통, 환기구 통에 둥지를 털고 알을 낳았다. 알이 부화하여 재재거리는 소리가 들리면 농부와 나는 한껏 조심스럽다. 공구 하나 찾으러 가는 것도, 환기구를 돌리는 것도 포기한다. 우편물은 우체통 옆이나 돌담 위, 승용차 보닛 위에 놓고 가라고 집배원 아저씨께 부탁을 한다. 가끔 파르스름한 알을 쓰다듬을 때도 있고, 서너 마리의 새끼가 태어나 입만 딱딱 벌리며 웅크리고 있는 모습을 관찰하곤 한다. 항상 둥지 가까운 곳에 딱새나 곤줄박이, 오목눈이의 수다스러운 우짖음과 포롱포롱 날아다니며 우짖는 모습을 보곤 한다.



 지난해였다. 우체통에서 딱새 세 마리가 깨어났다. 털이 제법 자라 날갯짓을 할 때였다. 아기 새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쓰다듬어주기도 하고 눈을 맞추기도 했다. ‘많이 컸네. 건강하게 잘 자라라.’ 부모 새가 먹이를 구하러 가고 없을 때 아기 새와 놀았다. 아기 새는 날마다 한 마리 씩 부모 새의 부름을 따라 숲으로 갔다. 가장 연약하고 못 얻어먹어 작았던 세 번째 아기 새는 며칠 간 더 머물렀고 나는 자주 그 녀석을 쓰다듬어 주었다.



 어느 날 우체통을 보니 빈 둥지만 남아 있었다. 내 손바닥의 온기를 기억하는 것일까. 삽짝에서 어슬렁거리면 가까운 나무에 앉아 노래를 하는 딱새를 봤다. 내 주변을 휙휙 날아다니는 것이 알은체 하는 것 같았다. 가을에 산초 씨를 벼리고 앉으면 늘 딱새 한 마리가 가까이 와서 놀았다. 농부에게 그 말을 했더니 ‘새들이 알긴 뭘 알아.’ 빈축만 샀다.



 오늘도 나는 농부의 빈축을 샀다. 오동통하게 살이 오른 뻐꾸기 아기 새가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갈 채비를 하는 것을 목격하면서다. 딱새 부부는 열심히 날아보라고 종용하느라 창고 안이 시끄럽다. 그 광경을 지켜보며 ‘왜 우리 집 창고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지? 삼십 여 년이 넘도록 살아온 터전인데. 여태 이런 일은 본 적이 없잖아. 지붕에 불꽃이 피어오르질 않나. 경자 년이 빨리 갔으면 좋겠네.’ 탁란을 확인하는 순간 나는 농부가 좋지 않은 일에 연루되는 것은 아닌가. 가슴을 졸이게 되었다. 내 속에서만 끓던 불안을 슬쩍 내비치자 농부는 ‘뻐꾸기의 생존법이다.’ 단칼에 내 불안을 잘라버린다.



 산속에 살면서 별별 일을 보기도 하고 겪기도 했다. 현재 창고의 쓰임새도 서너 번의 탈바꿈을 했다. 처음 산속에 자리 잡았을 때는 염소들의 잠자리였고, 십여 년 후에는 온갖 농기계들의 안식처였고 목수의 작업장이었다가 최근에는 단감 선별 장으로 거듭났다. 염소를 키울 때는 염소와 닭들이 우글거렸고 창고 겸 목수의 작업장을 할 때는 딱새나 곤줄박이의 둥지가 흔해졌고, 밤에는 박쥐도 날아오고 올빼미도 날아와 쉬어가는 자리였다. 단감 선별 장으로 거듭나면서 창고에서 뜬금없이 뻐꾸기의 탁란을 직접 목격하게 되었다.



 뻐꾸기 아기 새는 내가 다가가자 웅크렸던 다리를 쭉 펴고 발톱을 세우고 날개를 쫙 펴며 경계 자세를 취했다. 날카로운 부리가 선뜻 손을 내밀지 못하게 한다. ‘괜찮아.’ 나의 목소리에 불안을 느꼈는지 날갯짓을 한다. 곧 날아가겠다. 농부의 말에 손 전화를 생각했다. ‘사진을 찍어둬야지.’ 손 전화를 가지러 집안에 들어왔다 가니 아기 새가 둥지에서 떨어졌단다. 창고 바닥을 기는 아기 새를 봤다. 덩치만 컸지 제대로 날지도 못하면서 두 날개를 쫙 펴고 펄쩍펄쩍 뛰면서 도망을 간다. 딱새 부부는 난리가 났다. 다급하게 소리치면서 내 주위를 휙휙 정신없이 날아다닌다. ‘해코지 안한다. 걱정마라.’ 말한들 알아듣기나 할까.

 

 숲으로 달아나기 전에 용케 붙잡았다. 날카로운 부리로 나를 쪼려고 하지만 등판을 옹골차게 잡은 내 손을 쪼지 못한다. ‘괜찮아. 괜찮아.’ 다른 손으로 뻐꾸기 아기 새의 통통한 배를 쓰다듬고 대가리를 쓰다듬었다. 그제야 가만히 있다. 새까만 눈이 나를 직시한다. 살그머니 딱새의 둥지에 뻐꾸기 아기 새를 놓아주었다. 이미 동그스름하고 오목했던 작은 둥지는 뻐꾸기 아기 새의 큰 덩치에 뭉개져서 편편해져 있었다. 멀찍이 쌓인 컨테이너 단감박스 위에 앉은 딱새 부부도 조용히 바라본다. 우리가 적이 아니란 것을 아는 모양이다.



 뻐꾸기 아기 새를 둥지에 놓아주고 창고를 나왔다. 자유 비행의 맛을 알았다면 내일쯤이면 둥지가 빌 것이다. 딱새 부부는 제 부모 찾아 날아 가버린 아기 새를 그리워하며 다시 둥지를 다듬을 것이다. 멀지 않은 나무그늘에서 뻐꾸기가 뻐꾹 뻐뻐꾹 운다. 뻐꾸기 어미 새도 제 아기 새의 버둥거림을 숨 졸이며 지켜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더 희한한 것은 딱새에게 탁란해 자란 뻐꾸기는 알을 깔 철이 되면 다시 딱새의 둥지를 찾아 탁란을 한단다. 첫 각인 때문인지 첫 먹이를 준 어미 새를 기억하기 때문인지.

                          <2020. 7. 상주동학문집 작품 수록>

 

댓글목록

박래여님의 댓글

박래여 작성일

오랜만에 홈나들이를 합니다. 미안해서 수필 한 편 올려놓고 가요. 아직 문집도 못 받았지만 제 글이니 올려놔도 괜찮겠지요.
모두 남은 여름 잘 견디시고, 코로나 걸리지 않도록 개인 건강 잘 지키며 건강 유지 잘 하십시오.^^

한판암님의 댓글

한판암 작성일

와우! 딱새 둥지에 도둑 고양이처럼 몰래 스며들어 탁란해 부화되어, 뻐꾸기가 자라나는 신기한 과정을 지켜보셨네요. 아마도 보통 사람의 경우는 일생에 한 번 경험할 수 없는 귀한 경험하심을 축하 드립니다. 방송을 통해 그 과정을 몇 번 시청한 게 전부인데 무척 부럽네요.

박래여님의 댓글의 댓글

박래여 작성일

뻐꾸기 새끼는 딱새의 두 세 배는 컸습니다. 그 녀석 먹이느라 부부가 어찌나 고생을 하는지. 지켜보는 내내 마음이 아팠어요.^^

김언홍님의 댓글

김언홍 작성일

남의 둥지에 제 새끼를 버리고, 그 새끼가 클 때를 기다려 온종일 찾느라 울어대는 뻐꾸기.
그래도 그건 양호한 편이죠!. 아주 버린 것은 아니니까.
구하라 엄마는 짐승도 하지 않는 짓을 했어요. 자식이 죽기를 기다리기라도 한듯 상속 운운하며 달려들었으니까요.

어떻게 지내시나요.
코로나 때문에 외출도 맘대로 못하고 정말 숨통이 막힐 지경입니다.
세상이 너무 혼탁해지니까 하느님이 정화작업에 나선것 같은 생각이 드네요.

박래여님의 댓글의 댓글

박래여 작성일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으로 월요일부터 또 수영장이 문을 닫는다네요.
두 노인 때문에 가슴앓이 심하기도 하지만 어쩌겠나 싶어요. 늙고 병들어 골골대다 죽는 것이 사람의 수명인데.
암튼 샘도 건강 잘 챙기세요.^^

장은초님의 댓글

장은초 작성일

래녀샘 잘 지내시는지요? 탁란을 글로만 봤지, 실제  현장을 경험해보신 래녀샘이 부럽네요.
새에게 무슨 도덕을 논하겠는지요? 그저 그 과정이 신기하고 생소할 따름이지요.
딱새 부부에게 박수를 보내며 ㅎㅎ
선생님 시골살이 재미가 이런 게 아닐까요?

박래여님의 댓글의 댓글

박래여 작성일

은초 샘, 반가워요. 저도 처음 겪은 일입니다. 뻐꾸기 새끼가 그렇게 큰 놈인 줄도 몰랐어요. 입술이 새빨간 것이 귀엽더라고요.^^
시골에 젖어 산지 오래 되어서 재미라기보다 그냥 신기한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 화장실 환풍기 통도 맘대로 못 돌려요. 곤줄박이와 딱새 등 알을 까 놓고 재재거리는 바람에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