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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혼자네, 기분 짱이다. - 박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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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드림출판사 댓글 0건 조회 993회 작성일 19-11-28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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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네, 기분 짱이다.

 

  목수는 새벽부터 바쁘다. 주문 들어온 대봉 준비해 놓고 목수 일에 필요한 장비를 트럭에 실었다. 미리 짠 문짝도 싣고, 사다리도 싣고, 기계도 실었다. 지리산 와불님 덕에 맺은 스님의 집 보일러실과 난로를 손보기 위해 떠났다. 대중생활을 떠나 호젓한 산중에 낡은 집 한 채 구해 얼기설기 다듬어 놓고 부처님을 섬기는 스님은 예순 중반인데도 어린애처럼 소탈하고 밝다. 스님과 만나는 순간부터 닮은 성격인 줄 파악 되었다. 속 터놓고 맞장구 칠 수 있는 사이 같았다.

 

  여자 혼자 사는 산중생활에 남자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 한 두 곳이겠는가. 허술한 집이라 쥐 생원이 구멍을 뚫고 집안까지 들어오고, 겨울에는 부엌수도꼭지가 언다고 한다. 쥐라면 기겁을 하는 여자들이 많다. 도시에서 자란 스님 역시 쥐라면 사천왕보다 더 무섭다고 했다. 그 쥐를 없앨 방법은 하나뿐이다. 쥐구멍을 막는 일이다. 보일러실을 통해 부엌으로 들어와 한통을 친단다. 보일러실 문을 다는 일이 시급했다. 보일러실만 문제가 아니었다. 얇은 벽은 겨울 한풍에 견디기 힘들었다. 벽도 손봐야 할 것 같았다. ‘당신이 좀 해 주면 되겠네.’ 농담처럼 한 마디 던진 것이 그만 발목을 잡혔다. 단감수확 끝내고 보자 했지만 말빚을 갚지 않고는 못 사는 목수는 다시 산중 스님을 찾았고 일을 해 주기로 한 것이다.

 

  시부가 기운 없다. 가슴 아프다 등등, 하루도 빠끔한 날 없이 부르는 바람에 지친 목수는 내게 화풀이를 한다. ‘나도 힘들어 죽겠는데 왜 당신까지 맘대로 일을 만드는 거냐? 당신이 못하면 아무 말 말아야지.’하면서. 목수 생각은 않고 스님 생각만 한 내 잘못이라 고개 푹 숙이고 대꾸도 안했다. ‘당신한테 화내서 미안한데. 다음부터는 내 의사부터 물어봐라. 당신 맘대로 하지 말고.’ 목수는 밖에서 뺨 맞고 집에 와서 화풀이 하는 격이지만 금세 자신의 잘못을 알아채고 미안하다 말한다. 남들과 애들만 챙기고 자기는 챙겨주지 않는다고 불평불만을 터뜨리다가 혼자 제풀에 꺾인다. 나는 뒤꼍에 돌아가 킥킥 배꼽을 잡고 웃었다. 세상의 모든 남편이 어린애 같다더니. 목수도 예외는 아니다. 아내를 엄마로 착각하여 자신만 봐달라고 떼쓰는 것이 아니 우스우랴.

 

  목수는 강 처사를 데리고 새벽길을 떠났다. 지리산 자락 산중이라 멀다. 거긴 춥다며 스님은 아침 아홉시 넘어야 일을 할 수 있겠다며 천천히 오라했지만 자신의 일에는 빈틈이 없는 남자다. 손해를 볼지언정 남에게 책잡힐 짓은 않는 사람이다. 목수를 배웅하고 네 활개를 폈다. ‘혼자네. 기분 짱이다.’ 중얼거렸다. 소설 <방랑자들>을 잡고 빈둥거리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단감과 대봉 주문이 들어온다. 부처님이 내 마음을 예쁘게 받아들인 것일까. 스님의 고마운 마음이 전해진 것일까. 나누는 만큼 들어오는 것이 복일까. 대봉 수확이 늦은 바람에 제 때 다 못 팔아서 걱정했는데. 슬슬 팔려나가기 시작한다. 오랜 단골이신 분이 또 주문을 해 주신다. 식초도 구한다기에 13년이 넘은 식초 한 병도 넣었다. 오래 묵힌 식초는 약이다.

 

  읍내에서 대봉 사러온 아낙과 수다를 떨다가 대봉 한 박스 차에 실어 보냈다. 도매보다는 비싸도 시중에서 보다는 싼 가격이다. 대봉을 보고 좋다는 말을 들으니 나도 힘이 난다. 농사는 농부가 짓지만 팔기는 내가 판다. 어떤 물건이든 임자가 있기 마련이다. 좋은 물건은 좋은 가격을 받아야 마땅하다. 농사짓는데 들어간 경비 따지면 선물 하나도 못한다. 늘 말하지만 농사꾼이 부자 못 되는 것은 이문 남기는 장사보다 사람 장사를 우선하기 때문이다. 수확을 하면 모든 것이 푸지다. 푸진 곡식이나 푸성귀, 단감이 돈으로 보여야 할 텐데 나누어줄 곳부터 생각하는 것이 농사꾼과 장사꾼의 차이점이 아닐까.

 

 “우리 너무 비싸게 파는 것 아니가? 싸야 사 먹지.”

 “장사에 대중이 있던가. 비싸게 팔기도 하고, 싸게 팔기도 하는 거지. 장사꾼 맘이지.”

 “시중보다 싸야지.”

 “당연하지. 시중보다 싸고, 도매보다 비싸고. 문제는 퍼주고도 또 퍼주고 싶은 사람이 많아 탈이지. 손익계산 따지면 힘들어 대충 하자. 우리 복만큼 들어오겠지.”

 

  그러면서 목수는 목수대로 퍼내고, 나는 나대로 퍼내기를 한다. 빚 조금 갚고 삼시세끼 해결할 수 있고, 내년 농사자금 빚 안내면 좋겠지만 희망사항일 뿐 사는 일은 늘 오십 보 백 보 차이다. 들어오는 것보다 나가는 것이 많은 것 같아도 지난해나 올해나 엇비슷하다. 이만큼이 내 복이려니 여기면 내가 편하다.

 

  지리산 암자에 전화를 했다. 스님은 점심 먹는 중이라며 같이 오지 않았다고 나무란다. 두 남자가 고생을 많이 하고 있단다. 김치 맛이 어떠냐고 했더니 맛있단다. 스님의 밝은 목소리에서 티 없는 고마움을 느낀다. ‘나는 일 년 내내 김장김치만 먹어도 새 김치 한 번 안 담가주더니 스님이 김치 없다니까 재깍 김치 담가주네. 그래, 남들과 애들한테만 잘하고 나는 늘 찬밥이라 이거지.’ 어젯밤 시부 때문에 난 화를 내게 풀던 모습이 떠올라 또 실실 웃는다. 그 김치 때문에 목수에게 혼난 이야기를 하면 스님은 뭐라고 하실까. 혼자 즐거워하다가 목수에게 문자를 날렸다.

 

  ‘나 또 일만 벌렸네요. 희한하게 단감과 대봉 주문이 왕창 들어왔어요. 당신이 와야 포장을 할 텐데. 오늘 보내달라는데. 어쩔까요? 일 끝나는 대로 빨리 왔으면 좋겠어요. 가능하면 택배 시간 맞췄으면 싶어서.’

 

  문자 답이 없다. 문자가 안 터지는 곳인지. 또 성질 난 것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알렸으니 나머지는 당신 몫이지 뭐. 알게 뭐람. 나는 온종일 희희낙락이다. 진짜 온종일 혼자네, 기분 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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