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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사고 처리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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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판암 댓글 1건 조회 1,013회 작성일 21-04-20 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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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처리반장


신축년을 맞으며 닥칠 액땜을 위한 도액(度厄)*이었을까. 새해 벽두인 정월 초이튿날 아내가 경미한 자동차 접촉 사고를 냈다. 이제 겨우 일흔 셋의 나이인데 공간인지나 상황 판단의 능력에 문제가 생긴 걸까. 얌전하게 주차된 벤츠(benz)에 다가가서 사고를 냈기에 전적으로 아내 과실이다. 아직  상대방이 정비소에 수리를 의뢰하지 않은 까닭에 배상해야 할 금액이 얼마나 될지 모른다. 다만 사고 즉시 보험회사에 연락해 ‘사고출동요원’이 달려와 현장 사진을 촬영하여 본사에 접수 처리하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하지만 최고가의 차량에 겁 없이 대들며 시비를 입찰한 꼴이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은근히 걱정도 된다. 그래도 단순한 대물사고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 묘한 심정이 들쭉날쭉 교차한다. 아내가 운전을 시작한 지 어언 30년을 훌쩍 넘었다. 그동안 이번까지 네 차례 사고가 있었다. 사고를 유발한 당사자는 아내가 분명하다. 하지만 명의상 차주의 입장에서 매정하게 외면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되어 사고 처리반장을 자임하고 흔쾌히 수습에 나서기를 되풀이 한다.


첫 번째 사고 얘기이다. 생애 최초로 구입했던 승용차가 출고되고 나서 며칠 지나지 않았던 어느 날의 악몽이었다. 차를 마음대로 사용하도록 맡겨 놓고 출근을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아내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이리저리 뒤척이며 한 숨을 내쉬고 들이 쉬었다. 하도 괴이하여 집요하게 파고 들었더니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이실직고했다. 낮에 차를 몰고 밖에 나가고 싶어 안달하고 있을 때 옆 동(棟)의 지인이 커피를 마시자는 연락이 왔더란다. 신이 나서 옆 동으로 차를 몰고 가서 차를 마시고 집으로 돌아와 주차를 시키려다가 사고를 냈다는 어이없는 실토였다. 운전이 서툴러 브레이크 대신에 엑셀레터(accelerator)를 밟아 차가 아파트 1층의 베란다 밑으로 들어가며 보닛(bonnet)이 와장창 찌그러지고 볼썽 사납게 많은 생채기가 생겼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듣고 하도 어이가 없어 껄껄 웃으며 말했다. “서툰 초보 운전에서 큰 사고로 이어지지 않고 단순 사고에 그친 게 얼마나 다행이냐며 운전 공부 톡톡히 한 셈 치라고” 다독이면서 위로를 했다. 그런 맥락에서 백해무익한 다언을 삼간 채 그 다음 날 곧바로 정비 업소에 맡겨 말끔히 수리했었다.


두 번째인 사고는 운행 중 접촉 사고였다.  차를 구입하고 두세 해쯤 지난 어느 날 직장에서 보직자 회의를 마치고 여담을 나눌 때였다. 갑가기 휴대전화가 울렸다. 아내가 자동차 접촉사고가 났다며 경찰서에서 사고 조사서를 작성하는 중이라고 했다. 서둘러 달려갔다.  경찰서 바로 앞에서 직진하는 데 골목길에서 튀어나와 우회전하던 차가 갑자기 앞을 가로막는 손수레 때문에 급정거를 하면서 뒤를 따라가던 아내가 추돌한 사고였다. 하지만 쌍방 과실로 판정되어 자차 피해는 스스로 해결하도록 판정되어 말썽 없이 매듭지어졌다.


세 번째 사고 역시 운행 중 접촉 사고였다. 동문수학했던 대학 동기들이 부산과 경남에 넷뿐이다. 그래서 네 부부가 매년 돌아가며 자기가 사는 지역으로 초대하여 1박2일씩 품앗이를 하듯 접대하며 교류하던 시절이었다. 내 차례가 되어 통영의 ‘충무 마리나 리조트’를 빌려 친구들을 접대하고 돌아오는 길에 마산 외곽지역의 터널 앞에서 사고를 당했다. 오르막의 터널 부근을 지날 무렵 교통이 정체되고 졸음이 몰려와 잠시 눈을 붙이겠다고 이르며 눈을 감은 채 몇 백 미터(m)쯤 자났을 때 뭔가 “툭~”하고 부딪히는 소리에 번쩍 눈을 떴다.


아뿔싸*! 혼자서 운전하던 아내 역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깜빡 졸다가 완만한 오르막 터널 입구에서 앞 차와 가벼운 접촉 사고를 냈다. 갓길에 정차하고 살피니 앞 차의 뒷 범퍼(bumper)에 약간의 흠집이 나있었다. 그런데 가관인 것은 상대방 차는 폐차 직전의 상태로 골골거리며 명줄을 놓을 상황이라서 꼼꼼하게 살피지 않으면 피해 여부를 밝혀내기 어려웠다. 그래도 차주에게 수리비가 얼마가 되는지 확정되고 나서 연락해 달라고 일렀다. 사고가 발생하고 열흘쯤 지나도록 감감 무소식이라서 전화했더니 그제야 수리비가 30만원이라고 알려줘 즉시 송금하는 것으로 마무리 했다. 하지만 우리 차는 멀쩡해서 정비공장을 찾을 필요가 없었다.


이제까지 우리 집 승용차가 다섯 번인가 바뀌었다. 하지만 여태까지 나는 딱 두 번인가 차의 시동을 걸어 봤을 뿐이고 단 한 번도 운전대를 손에 쥐어본 적이 없다. 애오라지 아내가 운전하는 옆 자리를 지키는 충직한 붙박이 조수일 따름이다. 거기에는 아픈 사연이 담겨 있다. 아내가 30대 후반에 건강이 많이 좋지 않아 수술을 거듭하며 얼추 세 달 동안 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하고 나서도 거의 한 해 동안이나 자리를 보전하고 누워 지냈다. 그런데 아내는 서울에서 자라며 학교를 마치고 사회생활을 했기 때문에 마산에는 친구가 하나도 없었다. 결국 물 설고 낯 설은 삭막한 도시에 남편 따라 내려와서 건강을 완전히 잃을 위기에 직면했음에도 탈출구가 없어 무척 난감했다.


차를 타고 다니면서 바람이라도 쏘이면 건강을 되찾는 데 도움이 되지 싶어 새 차를 구입하여 통째로 운전대를 맡겼었다. 이런 관행이 굳어지면서 파고들 틈새가 아예 없어지면서 내 운전면허증은 장롱면허증으로 전락했다. 그렇게 아내에게 자동차에 대한 전권이 이양되면서 나는 승천하지 못한 이무기처럼 영원한 조수의 신세를 벗어날 여지가 없어졌다. 하지만 아내가 나의 믿음을 버리지 않고 건강을 되찾아 삶을 동행해 주는 것만으로도 과분하다. 그런 고마움에 그동안 몇 차례 접촉사고에도 초연한 채 허물하거나 탓하지 않는 너그러운(?) 사고 처리반장으로서 소임을 다소곳이 할 뿐이다. 그럴지라도 아내와 함께하는 황혼이 마냥 고맙고 즐거운 걸 보면 내가 한참 모자라는 반편(半偏)*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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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액(度厄 : 액막이) : 가정이나 개인에게 닥칠 액(厄)을 미리 막는 일.
* 아뿔싸 : 일이 잘못 되었거나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깨닫고 뉘우칠 때 가볍게 나  오는 소리.
* 반편(半偏) : 한 개를 절반으로 나눈 한편.  지능이 보통 사람보다 모자라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유의어 : 반편이, 바보).


시와 늪, 2021년 봄호(통권 51호), 2021년 4월 1일
(2021년 1월 7일 목요일)         

댓글목록

박래여님의 댓글

박래여 작성일

요즘 저도 남편 옆에 앉으면 조금 불안해져요. 남편의 운전솜씨가 예전같지 않은 것을 느끼면서요.
그래도 남편은 둘이 나서면 운전대를 제게 안 맡겨요. 술자리에 앉으면 대리운전 기사가 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