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드림출판사

조용한 여자 (1부) > 자유창작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고객센터
상담시간 : 오전 09:00 ~ 오후: 05:30
(주말 및 공휴일 휴무)
02.2612-5552
FAX:02.2688.5568

b3fd9ab59d168c7d4b7f2025f8741ecc_1583557247_0788.jpg 

자유글 조용한 여자 (1부)

페이지 정보

작성자 김언홍 댓글 2건 조회 843회 작성일 21-08-08 08:45

본문

조용한 여자(  1부) 

 

 

밤새 추적거리던 비가 멈췄다. 구름 뒤에서 해가 둥싯 얼굴을 내밀었다. 찻소리에 내다보니 골목 안으로 이삿짐 차 한대가 들어와 멈춰 선다.

 

"엄마 여기야?"

 

"그래 이제 부터 우리가 살 집이야."

 

서른 중반쯤 돼 보이는 여자가 차에서 내리며 아이들에게 주의를 주는 소리가 들렸다.

 

"위험하니까 차 옆에 있지들 말구 안으로 들어들 가.”

 

키가 늘씬한 여자의 얼굴이 분을 바른 것처럼 뽀얗다.

 

오토바이가 싣고 온 짜장면 그릇에 코를 박고 열심히 먹어대던 아이들이 잠잠해질 무렵에야 이삿짐을 다 부려놓고 차는 골목을 빠져나갔다.

 

 

사르락 사르락

 

새로 이사온 여자는 날마다 골목을 쓸었다. 새벽에 나와 골목을 쓰는 것만 아니라면 여자는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했다. 큰소리가 골목을 흔든 것은 그녀가 이사 온지 보름쯤 지났을 무렵이었다.

 

"아이구 저년이 시어미 밥도 안주고 나죽네 나죽어.“

 

이웃들이 하나둘 대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기 시작할 무렵 그녀의 집 문간방에 세든 여자가 고개를 흔들며 밖으로 나왔다 .

 

"이사올땐 콧배기도 안보이더니 짐 다 정리하니까 시어머니라고 들어와 저 난리에요"

 

입을 비죽거렸다.

 

그런데 남편은 없나봐요. 한 번도 못본 것 같아.”

 

글쎄요. 모르겠어요. 저도 한 번도 못 봤어요. 물어보기도 그렇고.....”

 

노인네는 왜 그래요?”

 

난들 아나요.”

 

노인의 악다구니는 오래도록 골목을 흔들었다. 누군가 그 집 대문을 탕탕 두드린 후에야 악다구니가 그쳤다.

 

 

​                                         *  *   *

며칠째 이가 아파 끙끙대는 내가 안되보였는지 낮에 남편이 직장에서 전화를 걸어왔다.

 

"갔어 안갔어?

 

"어딜가요."

 

남편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치과 안가? "

 

"갈게, 갈게 간다구"

 

"아 빨리 가봐"

 

 

낯선 남자 앞에서 입을 하마처럼 벌리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내키지 않아 차일피일 하다가 결국 한마디 듣고 말았다. 잇몸에다 마취제를 주사하는데 그게 무지 아프다던 친구의 말이 발목을 잡았던 원인이기도 했다. 핑계될 말이 바닥난 상태라 어쩔 수 없이 병원으로 향했다.

 

예약을 안 하셨죠? 좀 기다리셔야 해요.”

 

접수원 아가씨의 길죽한 얼굴을 바라보며 참 턱이 길기도 하다 생각하고 있는데 누군가 등을 살그머니 쳤다. 돌아다보니 새로 이사를 온 여자가 미소를 띠며 아는 체한다. 묻지도 않았건만 진료실을 턱으로 가리키며 둘째 때문에요한다. 진료실 안쪽에 그녀의 딸이 비스듬히 누워있다. 잠시 대화가 끊겼다. 무료했는지 그녀가 도서 거치대에 놓인 책 한권을 뽑아 든다.

 

그런데 골목을 왜 그렇게 날마다 쓸어요?”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질문에 그녀의 동공이 잠시 흔들렸다. 아차 싶어 얼른 대화를 돌렸다.

 

언제 차나 한잔 같이 해요 우리.”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리는 그녀의 긴치마 속 무릎이 가늘게 떨었다. 그녀가 딸을 데리고 나간 뒤로도 한참 지난 후에야 간호사가 내 이름을 호명했다.

 

                         *   *   * 

 

봄은 너무도 빨리 지나갔다. 숨이 턱턱 막히도록 뜨거운 열기가 골목을 가득가득 채우며 여름을 몰고 왔다. 여자는 여전히 새벽에 나와 빈 골목을 말없이 쓸었다. 골목안 사람들도 차츰 그녀의 빗자루질 소리에 무감각해져 갔다.

 

어머 아줌마 우리 안집 할머니가요. 땅바닥에다가 보자기 하나 달랑 펼쳐놓고 파를 팔더라구요.”

 

어느날 그집에 세든 여자가 내 팔을 잡아당겼다.

 

집에만 계시기 무료하셨나 보죠 뭐.”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은근히 궁금했다. 어느날 지나다 보니 길가에 헌 보자기 하나 달랑 펼쳐놓고 정말 파를 팔고있었다. 그게 시작이었나 보다. 차츰 가짓수가 늘어나기 시작하더니 동부도 한움큼 팥도 한움큰 때로는 아욱도 놓였고 시금치 따위도 놓고 팔았다. 서울 변두리 어디쯤에 그린벨트에 묶여 있는 땅이 상당하다던, 골목끝 부동산 남자의 말이 사실인듯 했다. 그 땅 귀퉁이 한자락을 일궈 노인이 심심풀이로 푸성귀따위를 심어 파는 모양이었다. 노인은 봄부터 겨울이 올 때까지 길에 퍼더앉아 그것들을 팔았다. 그것이 자신의 속을 달래는 방법인 듯 해 보였다. 여자는 시어머니가 땅에 퍼더앉아 그것들을 팔던 말던 내다 보지도 않았다. 서로의 사생활에 간섭않기로 작정하고 사는 사람들 같았다. 나중에야 알게된 사실이었지만 노인은 그렇게 차곡 차곡 모은 돈을 자신의 손자에게 줄 거라고 했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손자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기도 하는 거라며.

 

선선한 바람이 골목을 내달리기 시작했다. 여름내 그늘을 만들어주던 등나무의 마른 줄기 사이로 하늘이 속을 훤히 들어내 보일때 쌀자루를 가득 실은 차가 골목으로 들어섰다. 쌀자루가 어림잡아 열가마도 넘어보였다. 쌀장사를 시작했나? 낯선 남자가 인부를 시켜 이사 온 여자의 집으로 쌀자루를 나르는게 보였다.

 

"저이가 남편인가 봐요. 애들이 아빠아빠, 하는 걸 보니. 서울 변두리에 땅이 엄청 많다더니 농사도 짓는 모양이에요.

 

그녀의 집에 세 들어 살고 있는 여자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요? 그동안 어디 외국 갔다 왔나...."

 

시커먼 남자의 얼굴을 힐끔 거리는 내가 우습다는 듯 세든 여자가 입을 가리고 키득키득했다.

 

"그게 아니구 실은 그게...그게요...”

 

다음 말을 이을 듯 이을 듯, 하더니 그대로 입을 다물어 버리고 만다. 쌀을 싣고온 남자는 하룻밤도 머물지 않고 타고온 차로 되돌아갔다며 세든 여자가 고개를 흔들었다 .

 

골목 밖, 코너 머리에서 구멍가게를 하는 가겟집 여자가 나를 불러 세운 건 새로 이사온 여자네 집에 쌀차가 다녀간지 며칠지나지 않아서였다. 꽤나 반가운 모양새로 호들갑 스럽게 나를 불러세웠다

 

"어머 어디 가세요?"

 

"네에. 잠깐 다녀올데가 있어서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팔에 매달리며 몸을 밀착 시켰다.

 

이리좀 와보세요. 그 여자 있잖아요! 아줌마네 앞집으로 이사 온..”

 

"네 그 아줌마가 왜요??”

 

주위를 재빨리 둘러보더니 내 귀에 입을 바짝 들이댔다.

 

그 아줌마 남편 첩이 있데요.”

 

순간 나도 모르게 엉뚱한 말이 튀어나왔다.

 

"그 아줌마 참 예쁘게 생겼는데...”

 

가겟집 여자가 히죽 웃었다.

 

"이쁜 거 하고 상관없어요 아줌마. 남자들 바람끼, 그 첩한테도 자식이 있데요.”

 

마치 자신의 남편이 바람이라도 핀듯 마른 침을 칵 뱉었다.

 

 

늘 우울한 얼굴로 골목을 쓸던 여자 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녀는 왜그렇게 골목을 쓸었까. 그 텅빈 길을 쓸며 달려올 누군가를 기다렸던것은 아닐까. 가엽다는 생각이들었다. 가진 것이 많다고 행복한 것은 아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며칠후 이웃석기 엄마네 집으로 골목안 여자 몇이 모였다.

 

"우리도 친목모임 하나하자구. 모두 타지에서 와 이웃이 된 사람들인데 . 서로 의지도 되고 좋지 않겠어?"

 

그렇게 해서 결성된 자칭 민들레 모임은 나와 석기 엄마 그리고 네살 아래인 은호 엄마와 옆집 명지 엄마 이렇게 네명이었다. 명지 엄마가 주저주저 하며 입을 뗏다.

 

"저어.... 이왕이면 얌순이 아줌마 들어오게 하면 어때요?.

댓글목록

김언홍님의 댓글

김언홍 작성일

아주 오래 전에 습작해 놓았던 것을 올려봅니다.
심기일전 하는마음으로....

한판암님의 댓글

한판암 작성일

정말 오랫만에 나들이 하셨습니다. 그동안 별고 없으시고 댁내 두루 평안하시지요. 어찌 그리 무정하게 글 한편 올리지 않으셨습니까. 반가운 마음에 속독을 하면서 생각을 했습니다. 앞으로  계속 이어서 연재하실 것으로 생각하고 기다리겠습니다. 아직도 혹서기이오니 건강 조심하시면서 좋은 글 많이 스시기를 기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