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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등산로 옹벽에 새겨진 화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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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판암 댓글 2건 조회 1,173회 작성일 22-01-11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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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로 옹벽에 새겨진 화두


누가 등산로 옹벽에 글을 새기는 걸까. 이전에 거기에 새긴 여러 낙서와는 격과 결이 달라 의아하다. 강산이 두 번 변하고도 남을 만큼의 세월동안 찾는 신마산 밤밭고개 언저리의 청량산 등산로가 있다. 길의 시작은 같지만 초입의 500여 미터를 지나면 두 갈래 길이 있다. 우선 하나는 당국에서 산의 관리를 위해서 5~8부 능선을 따라 임도를 개설하고 포장해 누구나 언제든지 자유로운 차림으로 부담 없이 걷기에 맞춤하다. 다른 하나는 산의 정상을 오르내리는 길이 있다. 전자인 임도는 산허리를 깎아 도로를 개설했기 때문에 산 정상 쪽에는 산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시멘트를 타설해 만든 옹벽이 있다. 이 옹벽이 세월이 지나며 이끼가 끼는가 하면 먼지가 더께더께 덧쌓여 거무튀튀하게 변모했다. 그런 조건이 젊은이들의 낙서장(落書帳)으로 제격이라 여겨졌던가?


대충 4km 남짓한 임도 중에 적어도 2km 가까이 옹벽이다. 이 임도를 터덜터덜 걷다보면 치기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낙서들이 꽤 많다. 누군가에 대한 험담이나 욕설이 눈에 띄는가 하면 “철수 ♡ 영희”식의 설익은 풋사랑의 흔적을 비롯해서 “장군이와 멍군이 202○년 ○○월 ○○일 다녀가다”라는 등의 허접한 내용들이 주류를 이룬다. 이처럼 눈길을 끄는 내용들은 거의 없었다. 쓸데없는 낙서 때문에 애먼 시멘트 옹벽의 민낯을 일그러뜨린 것 같아 안쓰러웠다. 게다가 거의 모든 낙서가 살살 쓴 게 아니라 날카로운 돌이나 쇠꼬챙이로 꼭꼭 눌러씀으로써 옹벽에 지울 수 없이 깊은 생채기를 남긴 경우가 숱해서 더더욱 언짢았다.


옹벽에 씌인 낙서들은 어린 초등학생의 낙서장을 연상시킬 정도였다. 이런 모습의 옹벽의 모습을 일신시키고픈 마음이었을까. 하루에도 수백 명이 오가는 등산로 초입 옹벽에 누군가가 얼마 전부터 알 수 없는 화두 같은 글귀를 새겨놓기 시작했다. 그것도 삐뚤빼뚤 어설프게 갈겨쓴 낙서가 아니라 달필이며 한자로 일필휘지의 모양새가 예사롭지 않았다. 불과 열흘 전쯤에 발견된 내용은 “上善若水(상선약수 : 최상의 선은 물과 같다)”였다. 오늘 등산을 마치고 하산 길에 눈여겨 살폈더니 역시 한자로 이런 내용이 추가적으로 옹벽의 얼굴에 새겨져 있었다. “流水花開(유수화개 : 물은 흐르고 꽃이  피네)”와 “但知不會(단지불회 : 다만 알지 못함을 아는가)”라는 글귀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날카로운 쇠꼬챙이로 새겨 시멘트가 깊게 움푹 파였다.

 

요즈음 한자를 달필로 쓰며 일부러 쇠꼬챙이를 준비해서 새겼다는 사실을 미루어 짐작해본다. 글씨체를 미루어 짐작할 때 한자 실력이 수준급이고 한학에 상당히 조예가 깊은 사람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최소한 지천명 이상의 누군가로 여겨진다. 왜냐하면 한글세대는 한자를 모를 뿐 아니라 왕휘지(王徽之)의 서체(書體)를 빼닮은 달필이 있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이다. 그렇다면 왜 그 길을 오가는 대부분의 젊은 세대는 무슨 뜻인지 어림도 할 수 없는 글귀를 새겼을까. 요즘 세상 돌아가는 꼴이 하도 맘에 들지 않는 심정을 우회적으로 토로 하고픈 마음이었을까. 아니면 이따금 오가는 늙은 세대들이라고 자신을 돌아보며 자성하라는 당부이며 조언일까. 그런 심정이라면 좀 더 다른 방법으로 사회에 경종을 울려 줬으면 좋았으련만 그렇지 못해 유감이었다.


“上善若水(상선약수)”를 화두처럼 옹벽에 새긴 이는 노자(老子)의 도덕경 8장에 나오는 “上善若水/水善利萬物而不爭/處衆人之所惡/故幾於道(상선약수/수선리만물이부쟁/처중인지소오/고기어도)”를 소리 높여 말하고 싶었으리라. 다시 말하면 “으뜸가는 선(善)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고 다투지 않는다. 뭇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 처하니 도(道)에 가깝다”는 내용을 일깨우거나 들려주고 싶었으리라. 한편 “流水花開(유수화개)”의 원문(原文)인 중국의 소동파나 황정견(黃庭堅)의 시문(詩文)에 나타나는 내용은 아닐지라도 “空山無人/流水花開(공산무인/유수화개)” 정도의 경지를 깨우치고 싶어 새긴 글귀가 아닐까 싶다. 이 글귀가 뜻하는 바는 “텅 빈 산에 사람이 없어도 물은 흐르고 꽃이 피네”라는 자연의 이치와 철학을 깨우쳤으면 하는 바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또한 “但知不會(단지불회)”를 새긴 뜻은 심오한 불법의 도를 깨우치라는 뜻에서 “但知不會/是卽見性(단지불회/시즉견성)”을 일깨우려는 화두였을 게다. 이는 결국 “다만 알지 못함을 아는가, 그것이 깨달음(見性)*이다”라는 심오한 불법의 도를 염두에 둔 설법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여기서 “모른다”라는 의미는 일체의 생각이나 견해와 판단을 내려놓은 상태를 뜻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장난이나 허투루 휘갈겨 쓴 허접한 낙서가 아닌 무엇인가 메시지를 던져줌이 아닐까. 어쩌면 대덕 고승이 수도승들에게 내리는 화두와 상통하는 맥락을 떠오르게 한다. 먼동이 트기 전 깜깜한 첫 새벽부터 자정이 넘을 때까지 수많은 사람이 오가지만 그 글귀를 눈여겨보거나 이해할 경우는 별로 없지 싶은데도 구태여 새긴 연유가 무척 궁금하다. 비뚤어진 식자(識者)의 고뇌를 표출하고픈 욕심일까 아니면 탐욕으로 오염된 얼과 혼을 제대로 일깨워 바로 세우라는 조용한 충고이자 조언일까. 그가 초야에 묻힌 이름 없는 처사(處士)이던 현실이 마뜩찮아 꼬집고 비트는 해학(諧謔)에 달통한 우국지사이던 등산로를 오가는 길에 한번쯤 만나봤으면 하는 소망이다. 예사롭지 않은 글귀를 누구도 제대로 거들떠보지도 않은 등산로 옹벽에 새긴 진정한 의미를 파악해 보기 위해서 말이다. 분명 어린 아이가 아닐 터이다. 멀쩡한 어른이 인도(人道)에서 낮은 수로(水路)의 바닥으로 내려서서 오가는 등산객들을 등지고 옹벽에 글을 새기는 모습은 아무래도 우스꽝스럽게 투영되었을 터이다. 왜냐하면 어엿한 어른이 길옆 옹벽에 허접한 낙서를 하는 몰골이었을 것이기에 하는 얘기이다. 그가 그런 글귀를 새기며 전하고픈 진정한 메시지가 무엇이고 괴이한 방법으로 자신의 뜻을 표출하게 된 동기가 과연 어디에서 연유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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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견성(見性) : 불교에서 쓰이는 용어로 모든 망념과 미혹을 버리고 자기 본래의 성품인 자성을 깨달아 앎을 뜻한다.


조아문학, 2021년 겨울호(통권2호), 2021년 12월 20일
(2021년 10월 26일 화요일)


 

댓글목록

김언홍님의 댓글

김언홍 작성일

그 아름다운 금강산에, 김일성을 찬양하는 글을 바위에 크게 새겨놓았더라는 글을 읽고 마음이 몹시 얹잖았던 기억이나네요.
자연을 지키는 것도 인간이요, 훼숀하는 것도 인간이라니 ... 교수님, 날마다 좋은 날 되세요.

김재형님의 댓글

김재형 작성일

등산로 암벽에 새겨진 낙서인듯 아닌듯고명한 선인들의
시문을 통해 불법인듯 심오한 도를 깨우치려는 견성인지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잠시 좋은 시문에 심취되어 즐거운 시간 주신 선생님 감사합니다.
늘 건안건필을 기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