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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동지 팥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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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윤복순 댓글 2건 조회 883회 작성일 22-01-15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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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 팥죽

윤복순

 

빨리 동지가 오길 바랐다. 세시에서는 동지가 지나면 새해라고 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흔히들 아홉수가 안 좋다고 했다. 어째서 그런 말이 나왔는지는 모른다. 아무튼 올해를 빨리 보내고 싶다.

5월쯤 이었을 것이다. 새벽산책길에 같이 다니는 성()K 이야기를 한다. 그녀가 살았던 아파트를 지날 때였다. 그녀의 딸이 어느 여고에 입학해서 학교 가까이로 이사했다고 했다. 그게 아니라 그녀의 아들이 자살했다는 것이다. 주저앉고 말았다.

그녀의 아들이 대 여섯 살 때, 내가 수요일 마다 1시간 씩 돌봐 주었다. 그녀가 대학원에 다녔는데 애기 때문에 걱정을 해서 약국에서 봐 주었다. 애기는 차분해서 거의 말썽을 피우지 않았고 묻는 말에 대답도 잘했다. 약국에 오는 사람들이 귀엽다’ ‘똘똘하다.’ 이런 말을 많이 했다.

때때로 그 나이에 맞지 않는 것을 물어와 나를 놀라게 했다. 환경이나 과학 같은 것이었다. 이 아이가 잘 커서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가졌었다. 저희 엄마 말에 의하면 제 수준의 책을 봐야 하는데 그녀가 보는 책을 본다는 것이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았다. 학교 공부가 재미없다고 했다. 나는 옛날 사람이라서 걱정이 되었다. 정규수업을 받고 교우관계도 잘 맺고 사회생활도 잘 배우길 바랐는데 젊은 사람들 생각은 달랐다. 인터넷 강의를 듣고 검정고시로 고졸학력을 인정받았다.

수능성적도 좋아 어느 광역시의 국립대학에 또래보다 2년 빨리 입학했다. 어느 날 군대에 간다고 인사를 왔다. 점심을 같이 먹었다. 공군의 무슨 특기 부대라고 했는데 전공을 살리는 것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키가 작아 군 면제를 받았다고 했다.

작년 겨울 K가 밥을 먹자고 해 , 이런 코로나시절에 무슨 밥이냐, 조금 잠잠해지면 내가 전화할게.” 젊은 친구가 나와 놀아주니 밥은 내가 사야한다는 생각에 내가 먼저 전화하는 편이다.

그리고 연초에 만났을 때 이사했다는 얘길 들었다. 그런데 딸 때문이 아니었다니. 이래저래 시간을 맞춰보니 K가 밥 먹자고 전화했을 때가 그 때쯤인 것 같다. 하늘이 무너진, 가슴에 묻은 그녀의 얘기를 들어주지 못한 마음이 무거웠다.

진정을 하고 그녀와 만났다. 그녀가 자기 아들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겨우 조금 가라앉은 가슴에 내 마음 가볍자고 물결을 일으켜도 될까.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밥을 먹고 헤어졌다. 그 뒤 몇 번 연락을 했지만 그녀가 많이 바빴다. 아들을 잊기 위해 일을 자꾸 만들어 하는 것 같았다. 언제까지 모르는 척하고 살아야 할까. 세월이 약이라지만......

6월 말쯤이다.고교 동창이 폐암 말기라고 했다. 그녀는 결혼하지 않았다. 전도사다. “니가 왜.” 소리쳤다. 그녀는 담담했다. 오빠가 대학병원 종양내과 교수로 퇴직했다. 부산 오빠네 집으로 간다고 했다.

걱정 마, 대한민국 의술이 보통의술이냐. 충분히 나을 수 있어. 너의 오빠를 믿고 치료 잘 받아. 왜 이렇게 다리 후들거리는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겠다. 인생칠십고래희 라더니 백세시대에도 칠십은 만만한 나이가 아닌가 보다.

어느 날은 목소리에 힘이 하나도 없어 나를 우울하게 하고 어느 날은 조금 생기가 있기도 했다. “느네 하나님 감사하다.” 그녀가 웃었다. 항암치료가 힘들다고 했다. 잘 먹고 기운차려. 코로나19만 아니면 내가 대전 올라가서 맛있는 것 좀 사주고 싶다. 혼자 사니 뭘 제대로 먹겠는가. 아프지 않아도 혼자서는 잘 챙겨먹기 쉽지 않다.

그녀가 전화를 받지 않아 방정맞은 생각이 들어 마음을 졸이다가 진료 받는 중이었다고 해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한다.

 

한여름 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다. 친하게 지내는 성() 남편이 처방전을 가지고 왔다. 초기 치매환자들이 먹는 약이다. 이름을 보니 성이다. 나도 모르게 처방전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왜요?” 선생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머리가 많이 아프다고 해 이 병원 저 병원 다녔고 결과가 이렇게 나왔단다. 성은 어디 있어요? 차안에 있다고 해 뛰어 나갔다. 반은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조수석에 앉아있다. 큰 목소리로 동생아하고 불러주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성 나야 윤약국. 힘없이 알지한다.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맥없이 눈만 깜빡거렸다.

어디서부터 잘못 되었을까. 몇 달 전이다. 밭에서 돌아온 남편이 OO한테서 전화 왔냐고 물었다. 벌써 여러 번째 남편 휴대폰으로 전화가 온다는 것이다. 약국으로 하라고 알려줬는데도 계속 온다고 예사말로 치매왔나.”했다.

나도 나이가 있으니 금방 논 것도 못 찾고 깜빡깜빡한다. 성한테 전화해 놀러오라고 전화할 일 있으면 약국으로 하라고 했다. 번호를 잊어버렸다고 했다. 알려줬는데도 남편 휴대폰으로 전화가 온다고 했다.

성은 낙천적이고 자기 말 하는 것 좋아한다. 화려한 것 좋아하는 그녀는 내가 촌닭이라서 옷도 핸드백도 잘 주었다. 그나마 내게 좀 멋진 것은 성이 준 것들이다. 영리하고 기억력 좋고 말도 잘하고 인정 많은데 어째 이런 몹쓸 병에 걸렸을까.

병원에 갔다 오는 길이라며 성 부부가 왔다. 그녀는 주간보호센터에 다닌다. 당신의 직장이었던 농협에 다닌다고 하며 왜 할머니들만 있는지 모르겠단다. 어찌 나이에 비해 젊어가지고, 지금도 저리 아름다워 가지고... 머리부터 발끝 까지 다 갖춰 입어 내 마음을 더 아프게 할까.

포도출하가 시작 됐을 때다. 당신 손녀 옷을 한 가방씩 가져다주는 아주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우리 딸이 애기가 다섯이나 되니 항상 챙겨줬다. 포도 한 박스 드리고 싶으니 나오시라고 했다.

우리 집 양반 갔어.” 아저씨는 전기기술자다. 70대 중반인데도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전기공사를 맡아서 한다. 그날도 직원들 보다 먼저 출근을 했고 무엇을 손질하다 쓰러졌다. 직원들이 출근해 은급실로 모시고 갔을 때는 이미 숨이 멎은 상태였다고 했다.

삶이 이렇게 허망할 수도 있구나. 무서웠다. 살아있다고 할 수 있나. 한 치 앞도 모른다더니. 멍하니 하루를 보냈다.

며칠 전 그녀가 약국에 왔다.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서로 눈물만 보았다. 2021년 충격적인 일이 많았다. 받아들이며 감당하는데 많이 아팠다. 동지 팥죽 첫 숟갈은 올해의 액운을 다 떨쳐버려야겠다는 마음으로 먹었다.

2022년 임인년에는 내 주변에 좋은 일이 많았으면 좋겠다. “좋다. 잘 했다.” 박수 많이 치고 싶다. 보통 사람들의 일상이면 된다. 내년에는 코로나19로 지친 마음까지 치유의 해가 되길 빌며 동지 팥죽을 비웠다.

 

2021.12.28

 


댓글목록

한판암님의 댓글

한판암 작성일

해가 거듭될수록 여기저기서 지인들의 좋지 않은 소식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지난날엔 아홉수 피하지고 했는데, 이제는 그렇지도 않으니... 오늘도 대전에 사는 친구가 전화를 하며 와이프가 병원에 입원했다는 씁쓸한 소식...... 이제는 무엇보다 건강이 제일인데 그것도 제대로 지켜내지 못하고 비틀거리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까닭에 기쁘고 즐거운 닐 또한 그만큼 줄어들어 우울하게 만든 답니다. 새해 건강하시고 복 많이 받으세요.

윤복순님의 댓글

윤복순 작성일

동창이 어려운 고비는 넘겼다며 다행이 진행이 아주 드리다네요.
그녀의 오빠가 수십년 동안 암치료에 몸을 바친 의사인데, 이런 경우는 매우 드물대요.
목소리가 많이 좋아졌어요. 한결 기분이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