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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섣달에 온 따뜻한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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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래여 댓글 5건 조회 893회 작성일 22-01-17 19:37

본문

섣달에 온 따뜻한 책들

   박래여

 

 올 들어 가장 두껍게 얼음이 얼었다. 한파는 일주일 내내 이어질 것이란다. 겨울이 깊어져야 봄이 오니까. 기온 변화에 민감할 필요는 없다. 내게 주어진 일상을 엮다보면 섣달은 금세 가고 새해가 밝을 것이다. 지금, 코로나19의 기승이 극한점에 도달했다는 보도를 접한다. 사망자 수도 급증한단다.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저자거리만 나가도 사람들 사이에 서로가 서로를 불신하는 틈새가 보인다.

 

 그 틈새에 두 작가의 수필집과 시집이 왔다. 꾸준히 작품집을 엮는 작가를 만나면 우선 그 부지런함에 찬사를 보낸다. 그들이 보내준 수필집이나 소설집, 시집은 완독을 한다. 작품은 그 작가의 마음이 담긴 생활철학서가 아닌가. 작가의 진면목을 작품에서 본다. 내가 아는 작가는 작품과 작가가 동일 시 된다. 작품은 작가의 얼굴이다. 자신에게 맞춤한 문장으로 톡톡 튀기도 하고 유머도 곁들어 있고 깐깐한 성정이 그대로 나타난다. 내가 좋아하는 수필가의 작품은 배울 게 많다. 순수하고 예쁜 우리말을 찾아 적제적소에 넣은 작품을 읽는 것도 공부다. 작가의 일상이 진솔하게 그려진 작품은 읽는 맛이 난다.

 

 한 때는 나도 작품집을 내고 싶은 갈망에 허덕였던 적이 있었다. 아랫돌 뽑아 윗돌 공구는 촌부의 삶에서 자비로 책을 내기엔 경제적으로 부담스럽다. 문예 진흥기금 신청에 몇 번 도전했다. 서류 꾸미는 것도 힘들고 작품도 미달인지 미역국을 마셨다. 나잇살 늘면서 노탐이라 치부하고 접어버렸다. ‘완성도가 떨어지는 작품이라서 그럴 거야.’ 생각하니 편했다. 원로작가들이 작품공모에서 상을 타는 것을 보면서 저렇게 열정적으로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닌가. 너무 빨리 접어버린 것은 아닌가. 반문할 때도 있지만 그렇다고 글쓰기를 포기하지는 못한다. 글쓰기, 책읽기는 습관이고 생활이다 

 

 섣달, 책 읽을 틈이 생겨 좋다. 읽고 공감하고 배울 점이 많은 책이 선물로 왔다는 것도 좋다. 코로나의 확산으로 도서관 책을 빌릴 수 없어 서재를 뒤적거리는 판국인데 새 책이 왔다는 것은 즐거움이다. 남의 작품을 좋다 나쁘다 평하는 것도 평론가가 아닌 이상 왈가왈부할 수는 없다. 작가는 누구나 자신만의 세계를 가지고 있고, 그것을 글로써 표현하려고 애쓰기 때문이다. 자화자찬을 해도 작가의 몫이다. 책을 세상에 낸 후에는 그 책을 읽고 평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어떤 것을 취하고 어떤 것을 버리는 것도 독자의 몫이다. 우리는 늘 익숙한 것들에 대해 무심하다.

 


 쪽마루에 앉아 책을 읽는데 고양이가 곁에 와서 비빈다. 야생고양이를 거두었더니 집고양이가 되어버렸다. 나만 보이면 달려와 사랑해 달라고 보챈다. 비루먹은 고양이가 불쌍해서 먹이를 주게 됐는데 길들어버렸다. 길들어버린 고양이를 대하면 못내 아쉽다. 혹독한 자연에서 살려면 영악하고 날쌔야 하는데 사람에게 길든 고양이는 순하고 어리바리하다. 길들기 전에는 새, , 두더지, 개구리 등, 닥치는 대로 잡아 뜯더니 집 밥에 길들자 사냥을 포기한 것처럼 쪽마루에 누워 내 눈치만 본다. ‘잘못했구나. 얄팍한 인정이 고양이의 야생성을 버리게 만들었구나.’ 자책할 때도 있다. 밥 때만 되면 밥 달라고 우는 애절한 목소리를 외면할 수도 없다. 성가실 때도 있다. 내 밥보다 많이 먹는 고양이다. 할 수 없어 개 사료를 나누어주게 되었다.

 

 문제는 고양이 한 마리를 거두었더니 덩치 큰 산고양이가 또 나타났다. 자기도 거두어달라고 와서 보챈다. 어미 고양이일까. 길든 고양이의 밥을 빼앗아 먹는 것에 이골이 났다. 하는 수 없어 밥그릇 두 개를 멀찍이 놓고 사료도 나누어주고 밥도 나누어주지만 덩치 큰 야생고양이는 제 밥그릇보다 길든 고양이 밥그릇을 더 탐한다. 상대방의 밥을 빼앗아 먹는 것이 더 좋은 것인지. 보석을 열 개 가진 사람이 보석 하나 가진 사람의 것을 빼앗고 싶어 온갖 술수를 다 부린다고 하던가. 고양이들 세상이나 사람 세상이나 비슷한 것 같다. 자신이 갖고 싶은 것을 탐하는 것은 본능이다. 다만 그 본능이 지나쳐 탐욕이 될 때가 문제다. 자기 분수를 알고 내려놓을 때 자신도 주변인도 편안해지지 않을까. 작가가 책을 내는 것도 비슷한 것 같다. 내 이름으로 된 책을 가지고 싶다는 것, 독자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구 아닐까. 

 

 사람살이는 더 각박해져 간다지만 세상은 여전히 따뜻함이 깔려있기에 삶은 이어진다고 본다. 이 한겨울에도 삽짝 옆 따뜻한 양지에는 개나리가 노랗게 피어있다. 한 철 살다가는 인생 어떻게 살든 내 인생일 따름이지만 꽃을 보는 마음은 순수하다. 나는 시집보다 수필집에 먼저 손이 간다. 작가의 살아온 날들이 알게 모르게 밴 수필이 좋다. 작가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나를 반추할 수 있기 때문일까. 고양이를 쓰다듬는다. 고양이는 가르랑거리며 배를 뒤집는다. 고양이의 털에 앉은 햇살이 따뜻하다. 우리 모두 따뜻한 겨울나기를 했으면 좋겠다.

 

댓글목록

박래여님의 댓글

박래여 작성일

흠, 결국 나도 책을 내긴 내는데. 아직 실감 안 납니다. 승훈 샘, 언제쯤 실감나요?

한판암님의 댓글

한판암 작성일

아주 오랫만 입니다. 잘 지내셨죠? 임인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좋은글 많이 발표해서 주위 문우들 즐겁게 해주세요.  겨울이 깊어지면 새봄이 가까워지는 법이거늘 따스한 그날을 그리며 오늘도 나를 돌아 봅니다. 머지 않아 뵙기를 기원하면서.....

박래여님의 댓글의 댓글

박래여 작성일

샘, 건강하시죠?
저는 늘 산골에 처박혀 살아요.
가끔 바깥이 그리우나 귀찮아서 그냥 묻혀 있습니다.
나이들수록 집 나서기 어려워요.
원래 제 성격인가 싶기도 하고요.
그냥 글쓰기 책 보기로 ㅎㅎ
임인 년에도 가족 모두 건강하시고 선생님도 더 늙지 마세요.^^

김언홍님의 댓글

김언홍 작성일

샘이 보내주신 책, '풀등에 걸린 염주'.
열심히 읽고 있는 중입니다.
샘의 작품을 통해 저나름대로 소설 공부도 열심히 하면서요.
참 대단하세요. 그 풍부한 어휘력(문장력)에 깜짝깜짝 놀라곤 합니다.
좋은 책을 읽게 해주심에 감사드려요.

박래여님의 댓글의 댓글

박래여 작성일

샘, 고맙습니다.
소설집을 엮고도 아직 마음이 됩니다.
책 나누어 드리는 것도 아주 조심스러워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