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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글 탑정호에서 횡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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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윤복순 댓글 2건 조회 751회 작성일 22-01-29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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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정호에서 횡재하다

윤복순

 

포도농사가 끝나면 일요일 마다 여행을 한다. 그 힘으로 일주일을 살고 농번기를 대비해 비축한다. 그래야 농사철에 일요일 마다 밭일을 할 수 있다. 일철에는 농한기에 여행 다닐 희망으로 버틴다.

이번 일요일엔 어딜 갈까 항상 연구를 한다. 될 수 있으면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당일로 해야 하니 제한적일 수밖에 없어 여행지 고르기가 쉽지 않다. 약국에 오는 손님에게 묻기도 하고 책을 읽으면서 얻기도 한다. 가끔은 신문에서 힌트를 받기도 한다.

오늘은 논산이다. 논산은 익산에서 한 시간도 체 안 되는 거리다. 진작부터 돈암서원에 가보고 싶었는데 가깝다는 이유로 미뤄졌다. 2019년 제 43차 유네스코 세계유산 위원회는 한국의 서원” 9곳을 셰계유산에 등재하였다. 익산에서 가까운 곳에 정읍의 무성서원, 장성에 필암서원, 논산에 돈암서원이 있다. 모두 가보지 못했다.

익산에는 서원은 없고 향교만 있다. 향교는 정부가 세우고 지원했던 지방의 공립학교인 반면 서원은 개인들이 중심으로 각 지방에 세워진 사립학교다. 서원이나 향교는 배우는 것은 같았다고 한다.

서원만 구경하고 오기엔 서운해 연계할 곳을 찾았다. 탑정저수지다. 이곳은 아이들이 어렸을 때, 거의 40여 년 전이다. 그 때는 저수지라기보다 방죽 정도였을 것이다. 그 밑 도랑으로 물고기를 잡으러 갔었다. 말조개 미꾸라지 등을 잡았던 기억이 있다. 물놀이를 겸해서 갔다. 그리고는 쭉 잊고 지냈다.

먼 곳은 왕복 대여섯 시간 이상 운전을 해야 하니 여행을 즐길 수도 없지만 돌아올 땐 야간운전이 돼 대중교통을 이용하게 된다. 논산은 가까우니까 차를 가지고 가도 괜찮다.

오전엔 탑정저수지 둘레길을 걷고 오후에 서원을 구경할 계획이었다. 저수지는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크고 사람들도 많다. 어느새 주차장엔 차 놓을 곳이 없다. 주차장은 여러 군데여서 다른 곳으로 갔다. 안내도를 보며 어떻게 걸을까 궁리하고 있는데 안내원이 와서 도와준다.

호반길을 다 도는 데는 8시간이 걸린다. 음악분수 쪽으로 걷기로 했다. 둑방과 수변데크로 연결된다. 걷기도 좋고 날씨도 좋고 경치도 좋다. 그래도 사람이 너무 많다. 지난 일요일 옥정호 순환길을 걸었다. 경치도 좋았고 날씨도 좋았고 걷는 길도 좋았다. 그런데 걷는 사람은 우리 둘밖에 없었다. 드라이브 차량만 자주 지나갔다.

탑정호에 왜 이리 사람이 많을까. 출렁다리 길이가 600미터로 동양에서 최대라고 한다. 이 다리를 걸으러 이 많은 사람들이 왔을까. 겨울 산등성이에 나무들이 쭉쭉 서있는 것처럼 사람들이 출렁다리에 빼곡히 서 있다. 그곳에선 해찰도 못하고 앞사람 따라 줄줄 가야할 정도로 사람물결이다.

옥정호도 출렁다리를 놓는다고 공사를 하고 있었다. 길이가 이곳보단 훨씬 짧다. 대신 옥정호 안에 붕어섬이란 금붕어 모양의 섬이 있는데 그곳으로 출렁다리가 연결 되는 것 같다. 완공되면 옥정호에도 사람들이 많이 올까. 대단한 애향가인양 나는 어느새 전라북도 걱정을 하고 있다.

탑정호 둘레길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백제군사박물관이 있다. 계백장군의 활약상을 보여주는 곳이다. 박물관 내용도 좋지만 공원의 소나무들이 멋지다. 전지가 잘 되어 예복을 갖추어 입은 젊은 장교들 같다. 그 안을 걷는 맛은 최상의 예우를 갖춘 대접을 받는 기분이다.

이곳에서 돈암서원으로 연결된다는 안내를 받았다. 해발이 높진 않지만 산길로 가야 한다. 이 산 밑에 서원이 있을 거라 지레짐작을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올랐다. 웬걸, 한 봉우리 두 봉우리 세 봉우리를 넘어서야 기와지붕들이 보인다. 다행히 등산로는 험하지 않고 소나무숲길이다.

돈암서원은 유학자 김장생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기호유학의 대표 서원이다. 선생 사후 제자와 유림들이 창건하였으며 조선 중기 이후 우리나라 예학의 산실이 되었다. 현종 원년에(1660) 사액을 받았으며 흥선대원군이 전국 651여 개의 서원에 철폐령을 내려 47개만 남았을 때도 명맥을 유지했다고 한다.

숭례사로 들어가는 내삼문의 꽃담이 인상적이다. 단순한 문양인줄 알았는데 안내책자에서 알아보니 글자다. ‘땅이 온갖 것을 등에 지고 바다가 모든 물을 받아주듯 포용하라.(地負海涵)’ ‘지식은 넓히고 행동은 예의에 맞게 하라.(博文約禮)’ ‘좋은 날씨 상서로운 구름 부드러운 바람과 단비, 즉 다른 사람을 편안하게 해 주고 웃는 얼굴로 대하라.(瑞日和風)이다. 김장생과 그의 후손들의 예학정신을 가장 잘 보여주는 12개의 글자를 새겨 놓았다고 하는데 지금의 학교 교훈으로 써도 꽤 괜찮은 교훈이다. 나는 세 번째 서일화풍으로 매일매일 약국에서 손님을 맞아야겠다고 다짐해 보았다.

4시간 이상 걸었는데 왔던 길로 되돌아가기는 지치기도 하지만 짧은 해도 문제다. 동네 사람을 만나 시내버스를 알아봐야겠는데 겨울철 시골에서 사람 만나기가 쉽지 않다. 운 좋게 동네 아저씨를 만났다. 시내버스는 언제 올 줄 모를 뿐 아니라 시내로 들어가 다시 주차장으로 가는 버스를 타야 하니 어서 뒤돌아 가라고 한다.

해가 쏙 빠져 주차장에 도착 할 줄 알았는데 2시간 남짓밖에 걸리지 않았다. 출렁다리 왕복한 시간, 박물관 관람시간, 점심대용으로 과자 먹으면서 잠깐 쉰 시간을 잘 못 계산한 것이다. 아무튼 시간을 벌어서 익산 시내에 들어오니 캄캄했다.

돈암서원에서 동네아저씨를 만난 것도, 야간운전을 안한 것도, 좋은 날씨에 여섯 시간 넘게 걸을 수 있었던 것도, 아름다운 탑정호에 돈암서원까지 한꺼번에 구경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횡재다. 돈암서원이 탑정호와 연결되는 줄은 몰랐다. 미리 공부하지 않고 가서 만나는 이 기쁨, 횡재가 아니고 뭣일까. 또 일주일을 잘 지낼 수 있다. 다음 일요일엔 어디를 갈까.

 

2021.12.6

 


댓글목록

윤복순님의 댓글

윤복순 작성일

설 잘 보내세요.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특히 코로나19 아무 탈 없기를 빕니다.

한판암님의 댓글

한판암 작성일

농한기에 매주 일요일 당일치기로 나서는 여행길 정말 즐겁고 보람되겠습니다.
길 나서기를 꺼리는 저는 몇 년이 지나도 간단히 가족이 함께 하는 여행길은
언감생심이랍니다.
아내는 매일 수영을 다니고 저는 동네 뒤산을 오르내리는 게 전부인
게으름뱅이지요.
닮고 싶은데 현실로 옮기지 못하고.....
즐거운 설 명절 보람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