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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노인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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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판암 댓글 2건 조회 966회 작성일 22-02-08 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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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을 생각한다


사전에 따르면 ‘나이가 들어 늙은 사람’을 ‘노인’으이라고 애매하게 정의하고 있다. 정확한 기준이 명문화 되지 않은 까닭인지 그 연령 기준이 다를 뿐 아니라 자꾸 헷갈린다. 이런 현실에서 통념상 ‘생의 마지막 단계로서 나이가 든 늙은이’를 ‘노인’ 혹은 ‘어르신’으로 호칭한다. 그들을 지칭하는 호칭에도 분명 얼굴을 찡그리게 만드는 표현이 있다. 예를 들면 어린 사람들이 어른을 “노친네, 노인네, 노땅, 노궁(老窮)” 등으로 호칭함은 비하로 조롱에 가깝고 옛날 도덕률을 기준에서는 ‘가정교육이 안 됐다’는 소리를 들을 가능성이 높다. 이 말들은 같은 연령대 사이에는 격의 없이 친근함을 나타내기도 한다. 평균 수명이 대폭 증가하면서 백세시대를 구가하고 있을지라도 ‘아무래도 뒷방 늙은이 대접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오늘의 노인들을 생각한다.


그 옛날 공경의 대상으로 절대적인 존재였던 때문일까. 다양했던 호칭의 간추림이다. 구로(耈老), 기수(耆叟), 노창(老蒼), 늙으신네, 늙은이, 노년(老年), 노옹(老翁), 노구(老軀), 영감(令監), 백수(白叟), 숙기(宿耆) 따위가 있다. 아울러 높임말로 노군(老君), 노인장(老人丈), 노존(老尊), 존로(尊老) 등이 쓰였다. 한편 무당들은 노인을 “감대” 라는 은어(隱語)로 불렀다. 나이든 이들에게 대놓고 ‘노인’이라는 호칭이 껄끄럽고 야박할 뿐 아니라 결례라고 생각했던 걸까. “노인” 대신에 “어르신”으로 호칭하는 기지와 기민함을 자랑했다. 이런 따스한 배려는 지구촌 모두가 같은 생각이었던가 보다. 그런 맥락일 게다. 일본에서는 “토시요리(としより : 年寄)”로, 영국에서는 “old” 대신에 “elderly”로, 미국에서는 “old man” 대신에 “senior citizen”으로 표현하고 있단다.


유교 사상이 지배했던 사회이었던 때문일까 아니면 단명(短命)한 사회에서 어른에 대한 당연한 예우였을까. 그 시절 연로한 어르신들의 나이 듦에 대해 아름다운 의미나 존경의 뜻을 담아 표현했던 호칭이 흘러넘칠 지경이다. 60세를 이순(耳順), 61세를 환갑(還甲)이나 회갑(回甲)을 비롯해서 환력(還曆) 혹은 화갑(華甲), 62세를 진갑(進甲), 70세를 고희(古稀), 71세를 망팔(望八), 77세를 희수(喜壽), 80세를 산수(傘壽), 81세를 망구(望九), 88세를 미수(米壽)라고 호칭했다. 한편 90세를 졸수(卒壽), 91세를 망백(望百), 99세를 백수(白壽), 100세를 상수(上壽), 111세를 황수(皇壽), 120세를 천수(天壽)라 했다. 또한 중국의 예기(禮記)에서는 60세를 기(耆), 70세를 노(老)라고 칭했다. 아울러 60~70세 노인을 기로(耆老), 80세와 90세를 모(耄)라고 하면서 그들은 죄를 지어도 형을 받지 않는다(悼與耄雖有罪/不加刑焉)는 입장이 그 당시 사회의 암묵적인 합의이며 정서였던 것 같다. 또한 100세를 기이(期頤),  80~100세를 통틀어 모기(耄期)라고 불렀다.


또 다른 측면에서 어르신들을 섬겼던 흔적이다. 조선시대 60세인 이순이 되면 동네 이웃들이 지팡이를 만들어 주었다. 이를 향장(鄕杖)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70세인 고희가 되면 나라에서 지팡이를 만들어 줬는데 이것이 국장(國杖)이다. 어떤 출전(出典)에는 이 국장을 감사(監司)가 만들어 드린다는 이유에서 구장(鳩杖)이라고 호칭했다는 귀띔이다. 또한 80세인 산수가 되면 임금이 지팡이를 하사 했다. 이를 조장(朝杖)이라 호칭했다. 이 뿐 아니라 경로효친 사상을 고취시키기 위해 나라에서 기로소(耆老所)를 설치하고 고희 이상의 충신들에게 기로연(耆老宴)을 베풀었다.


가는 세월 잡을 수 없듯이 사람이 세월 따라 늙어가며 병듦을 어이 거역하리. 정신이 혼미할 정도로 급변하는 세월 때문일 게다.  삶을 꾸리면서 어렵사리 여퉜던 경륜보다는 변화에 대응력을 더 높이 사는 세상이다. 아날로그 세대(analog generation)에 태어나 디지털 시대(digital generation)인 금세기로 이주해온 디지털 이주민(digital immigrants)들은 젊은 디지털 원주민(digital natives)에 비해 변화에 둔감 해 경쟁에서 밀리거나 패배자로 전락할 개연성이 다분하다. 그런 정황은 깡그리 외면한 채 정권욕에 눈먼 정치 모리배들은 자기 진영에 불리하다 판단되면 노인들에게 내뱉은 말이다. “..... 그분들은 어쩌면 이제 무대에서 퇴장하실 분들이니까 이제 집에서 쉬셔도 되고...”라고 망언하거나, “누가 봐도 79세면 쉬셔야지 왜 일을 하려고 하나. 쉬는 게 상식....”이라는 망발을 했다. 그런가 하면 “장애인은 다양하다 1급 2급 3급.......나이가 들면 다 장애인이다”라는 패륜적인 언사를 거리낌 없이 쏟아냈다. 어느 누구도 피할 도리가 없는 늙음은 순리이며 자연의 이치임에도 말이다.


그 옛날 경륜이란 천금같이 귀중한 가치가 있음을 함축했던 촌철살인의 몇 가지 예이다. ‘고치는 늙은 누에만이 짓는다’는 뜻의 노잠작견(老蠶作繭), ‘오래된 조개가 진주를 만든다’는 의미의 노방생주(老蚌生珠), ‘늙은 말의 지혜’라는 뜻으로 쓰이는 노마지지(老馬之智) 따위가 그들이다. 여기서 노마지지에 대한 고사를 살짝 엿보며 그 이면에 숨겨진 참뜻을 되새겼으면 좋겠다. “춘추시대 제나라 환공(桓公)이 고죽(孤竹)을 징벌하러 갔을 때의 일이다. 징벌에 나설 무렵은 봄이었지만 돌아올 때는 겨울로서 악천후 때문에 길을 잃었다. 이때 관중(管仲)이 이런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이럴 경우 늙은 말의 지혜가 필요하다’면서 늙은 말 한 마리를 풀어 놓고 그 뒤를 따라갔다. 말이 가는대로 따라 갔더니 거짓말 같이 큰 길이 나타나 위기를 면했다”. 때로는 삶에서 얻은 금 쪽 같은 경험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소중한 자산이련만 그에 대한 합당한 배려 없이 배척되거나 무시하는 단세포적인 현실이 안타깝다.


왕정시대 단면의 얘기이다. 임금의 자리를 양위한 왕을 상왕(上王)이라고 호칭했다. 아울러 그 상왕 윗대의 왕을 태상왕(太上王)이라고 했다. 또한 임금의 아내를 왕비(王妃)나 중궁(中宮) 혹은 중전(中殿)이라 했고, 선왕의 비(妃)를 왕대비(王大妃) 혹은 대비(大妃)라 했으며, 전전 임금의 비를 대왕대비(大王大妃)이라 불렀다. 이들 호칭은 존경과 섬김의 마음이 가득 담긴 증적으로 온갖 생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변화의 물결에 선제적 대응이 생존의 선결 충족요건이며 능력과 효율이 무엇보다 우선하는 각박한 시대라도 과거를 토대로 존재하는 현실이 분명하다. 그럴지라도 늙음을 무조건 폄하하거나 기필코 내치려 모두걸기(all in)를 하지 말고 그들의 풍부한 경륜을 바탕으로 내일을 준비할 수 있는 길을 함께 모색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으면 하는 바람은 터무니없는 탐욕일까.


문예감성, 2021년 겨울호(통권 27호), 2021년 12월 15일
(2021년 10월 17일 일요일)


 

댓글목록

김언홍님의 댓글

김언홍 작성일

교수님, 책 잘 받았습니다
그래도 걸어야 한다 ㅡ 제목이 마치 저를 두고 말하는 것같아 가슴이 뭉쿨했습니다.
그래도 걸어야 한다. 남은 생이 다 할때까지 필을 놓지 말아야 한다~다시 한번 생각했지요.
감사합니다. 잘 읽겠습니다.

박래여님의 댓글

박래여 작성일

걸어야 하는데 걷는 게 참 힘들다고 생각할 때가 많아요.^^
꾸준한 운동이 좋다는 걸 알면서도 힘에 부칠 때 많아요.^^
선생님, 저도 잘 읽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