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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글 즐거운 고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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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윤복순 댓글 3건 조회 784회 작성일 22-02-12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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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고행

윤복순

 

몇 해 전 섬진강 자전거길을 걸었다. 임실에서 광양까지 일요일마다 구간을 정해 걸었다. 구례에서 사성암 가는 길 앞을 지났다. 산 말랭이에 조그만 집이 보였는데 그곳일 거라 짐작만 했다.

섬진강을 걷는 일정이라서 들르지 못해 아쉬웠다. 이번엔 그곳만 구경할 마음으로 나섰다. 구례구역은 행정구역으론 순천에 속한다. 섬진강을 건너야 구례다. 역 앞엔 순천에 관한 관광안내와 시내버스 노선 등이 있다.

역 안에서 구례에 관한 안내책자를 찾아 들으니 구례 군청에서 나온 직원이 말을 걸었다. 사성암에 가고 싶다고 했다. 버스터미널로 가서 동해가는 시내버스를 타고 오산주차장에서 내려 마을버스를 타라고 알려준다. 마을버스는 자주 있단다.

철도를 개설할 당시 구례에 말마디나 하는 양반이 살았고 그 양반이 동네에 철길이 나는 것을 반대해 외곽으로 빠지다 보니 기차역과 시내권이 멀다. 그래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구례여행하기가 불편하다.

시골의 시내버스는 자주 있는 것도 아니어서 안내지도를 펴고 사성암을 찾으니 터미널까지의 절반도 안 된다. 걸어서 가기로 했다. 내가 지팡이를 짚고 있으니 못 걸을 줄 알고 버스로 가는 길을 알려 준 것 같다. 지난 번 섬진강 걷던 그 길이다. 1시간 정도 걸어 오산 주차장에 도착했다. 마을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가기로 했다.

사성암은 의상, 원효대사, 도선, 진각국사가 수도하였다 하여 사성암(四聖庵)이다. 이런 곳을 구경하려면 걸어 올라가는 고행쯤은 감수해야 할 것 같다. 성철스님은 당신을 만나온 아무개 전 대통령에게 3000배를 먼저 하라고 했다지 않은가. 경사가 급하지만 차가 다니는 길이니 힘은 들지만 위험하지는 않다. 해발 600m가 되지 않는다.

걷는 동안 마을버스는 말할 것도 없고 택시며 승용차를 많이 만났다. 이 절이 이렇게 유명한 줄 몰랐다. 마을버스는 올라가는 거나 내려오는 거나 빈 좌석이 없는 것 같다.

걸어서 오르는 사람은 우리 밖에 없다. 모처럼 마스크를 벗고 좋은 공기를 마시며 걸으니 온 몸의 세포들이 노래를 부른다. 구불구불 몇 고개를 넘으려니 지치기는 했지만 사성을 만나려면 이 정도는 감내해야 한다고 마음을 바꾸니 즐겁다. 날씨도 좋다.

두 시간 쯤 올라 주차장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다. 절 까지는 급경사다. 산꼭대기의 절이니 절벽에 기둥을 받쳐 절을 지었다. 그 옛날에 어떻게 지었을까. 빈손으로 올라가기도 힘이 든다.

마애여래입상이 유명하다는데 이 절벽 저 절벽 바위들을 눈을 크게 뜨고 봐도 보이지 않는다. 높이가 3.9m 라는데 어디에 계실까. 절 마당 한 쪽에 큰 바위가 있어 혹시나 하야 깨금발을 하고 보기도 했다.

제일 높은 곳에 있는 약사전으로 갔다. 겨우 한 사람이 오를 수 있게 계단으로 되어 있다. 약사전 옆에 유리광전 설명이 있다. ‘동방 유리광세계의 교주인 약사여래 부처님을 모신 곳으로 마애여래입상은 원효대사가 선정에 들어 손톱으로 그렸다고 전해지며 사성암의 주불이다.’

약사전에 들어갔다. 부처님이 계시지 않다. 큰 통유리 뒤에 바위가 있고 약사여래가 음각기법으로 새겨져 있다. 지금 까지 이런 불전은 처음이다. 발이 딱 얼어붙고 숨이 멎을 것 같은 경외심이 일었다. 바위에 손톱으로 약사여래를 새겼다니!

석가모니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는 곳에는 불상을 모시지 않는다는 것은 알았고, 어느 해 통도사 적멸보궁에서 유리를 통해 금강계단을 보았다. 금강계단을 한 바퀴 돈 것보다 더 설레었다. 왠지 운수대통 할 것 같은 기분이다.

이 절엔 소원바위가 있어 한 가지 소원은 꼭 들어준다고 한다. 연초라서 많은 사람들이 소원을 빌러 왔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신기한 것은 그 바위에 부처님이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을 본 사람만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소원바위 앞에 오래 서서, 이리저리 방향을 바꿔가며 바라보았지만 부처님은 고사하고 사람 얼굴 형태도 보이지 않았다. 걸어서 올라오는 고행을 했어도 부족한가 보다.

코로나19가 빨리 종식되고 가족들이 몸도 마음도 건강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아 보았다. 사람들이 많아 오래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수도 없다. 옆으로 돌아보니 도선굴이 있다. 들어가는 입구가 낮아 몸을 많이 낮추고 들어갔다. 내부는 넉넉해서 몸을 펴도 되는데 이상하게 몸이 낮춰져 허리를 구부린 채로 굴을 통과 하였다.

굴에서 나오니 지리산의 여러 봉을 볼 수 있는 전망대다. 안개가 가득 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눈을 감고 노고단, 토끼봉, 반야봉, 통꼭봉, 천왕봉 뱀사골, 중산리계곡, 피아골, 백무동계곡 등등 그려 보았다. 지리산은 종주뿐만 아니라 열댓 번 정도 갔기에 상상해 보는 재미도 좋다.

일반 절에는 없는 배례석이 있다. 초창기 이곳에는 부처님을 모시지 않아 화엄사를 바라보며 절을 했던 곳이라는 설명이다. 나도 그곳에 서서 대학 1학년 때, 50여 년 전 화엄사에서 노고단을 올랐던 때를 잠시 생각해 보았다.

돌아 나오는 길에 다시 소원바위 앞에 섰다. 어렴풋이 이마 코 입, 사람 옆얼굴이 보였다. 미소는 보이지 않았다. 도선굴에서 마음을 다 내려놓았다(下心)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욕심이 남았나 보다. 집에 돌아와 찾아보니 선명하게 미소 짖고 있다. 윗입술이 살짝 올라가고 입 꼬리도 벌어져 있다.

절 마당에선 섬진강과 구례 시내가 한 눈에 들어 왔다. 확 트인 시야에 가슴이 뻥 뚫린다. 이 절이 명당은 명당이란 생각이 들었다. 한참을 서서 구례구역에서 여기까지 걸어온 길을 짚어 보았다.

사성암의 정기를 듬뿍 받았으니 구례구역 까지 걸어서 가기로 했다. 경사가 급해 내려가기도 쉽진 않다. 얼마나 내려왔을까. “안녕하세요.” 뒤에서 인사를 걸어온다. 우리 말고 걷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반가웠다. 뒤 따라 오면서 많이 궁금했단다. 익산에서 왔고 역까지 걸어가는 중이라고 했다. 자기는 여수에서 열차로 와 걸어서 오산(사성암이 있는 산) 등반까지 하고 내려가는 중이란다.

부부가 노후를 이렇게 보내니 좋아 보이고 멋지다고 한다. 싱글이란 말에 상처를 했는지 결혼하지 않았는지는 모르지만 짠한 마음이 들었다. 구례에서 저녁이나 같이 먹자고 하니 우리보다 1시간 빠른 기차표를 예매했다. 그가 좋은 음식점을 소개해 줬다.

여행은 안 가본 곳에 대한 설렘도 좋고, 아름다운 풍광도 좋고, 햇빛도 좋고, 걷는 것도 좋고, 그곳의 특산물을 제철에 먹어보는 맛도 좋다. 그래도 제일 좋은 것은 길 위에서 만나는 아름다운 사람이다.

내 차를 타고 쭉 갔다 쭉 오면 무슨 재민가. 걸으며 만나는 사람이라야 이야기도 삶도 나눌 수 있다. 걷는 것은 고행이지만 보통 사람들을 만나 위로 받고 위로하며 선한 에너지를 받는 즐거움이 있다.

2022.1.5


댓글목록

한판암님의 댓글

한판암 작성일

구례에 사성암(四聖庵)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으며, 사성암이란 의상, 원효대사, 도선, 진각국사가 수도하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사실도 새로 공부했습니다. 저도 연이 닿는다면 언젠가 꼭 한 번 찾아보고 싶어집니다. 좋은 공부 알차게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박래여님의 댓글의 댓글

박래여 작성일

사성암 오르면 풍경이 아주 멋져요. 아주 가파른 것이 문제지만^^ 샘, 한 번 나들이 가세요.^^

박래여님의 댓글

박래여 작성일

선생님, 의령쪽으로 여행 오실 일 있으면 저를 잊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