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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여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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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윤복순 댓글 2건 조회 808회 작성일 22-02-26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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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에서

윤복순

 

해와 숨바꼭질을 하며 자연이 주는 은혜에 몸도 마음도 흐뭇하다. 이때 큰소리가 들렸다. 벌써 세 번째요. 차안에서 마스크 잘 쓰시라고 몇 번을 얘기 했는데 또 벗었다는 승무원의 역정이다. 내 나이 또래나 되는 아주머니들이다. 예민한 때라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무외시(無畏施)가 생각났다. 재물을 주는 재보시, 지혜를 주는 법보시, 두려움을 주지 않는 무외시, 이 가운데 으뜸은 무외시다. 언행 감정 표정 처신 차림새 등이 남에게 두려움을 주지 않으면 된다. 화난 사람 옆에 있으면 불안하다. 내가 즐겁고 평화로우면 상대도 그렇게 된다. 불가에선 불상의 온화한 기운 그 자체가 무외시라고 한다.

겨울바다가 보고 싶어 여수에 갔다. 여수는 여러 번째다. 이번엔 장도에 간다. 여수엑스포역 안내소에서 친절한 안내를 받았다. 마침 물때도 맞아 여행하는데 지장이 없다고 한다. 장도는 하루에 두 번 물에 잠기도록 설계된 진섬다리가 묘미다.

섬 중앙에 있는 장도 전시관에서는 창작스튜디오 입주 작가전이 열리고 있다. “물과 섬이다. 여수의 섬들을 직접 탐방하여 영감을 받은 바를 상상풍경으로 풀어낸 작품들이다. 작품에 제목이 없다. 관람자도 상상을 동원해 보라고 한다. 자연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몸의 모든 감각을 열어놓고 현장에서 느껴지는 그 자체를 온전히 경험해야 한다. 풍경은 그 풍경을 통해 살아 움직이는 본인의 감정과 이와 함께 연상되는 마음의 풍경을 작품 속에 투영시키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전시관에서 나와 야외공연을 할 수 있는 공연장을 거쳐 섬 일주를 하였다. 시야를 가리는 나무들을 잘라낸 곳에서 소나무 토막(?)을 주웠다. 맘에 드는 두께는 아니지만 집에 두면 멋도 있고 소나무향도 퍼질 것 같다. 남편이 그걸 왜 줍느냐고 야단이다. 당장 버리란다. 평화가 깨졌다.

섬에서 나와 웅천친수공원을 걷는데 초등학교 5~6학년쯤으로 보이는 남학생 네 명이 가위 바위 보를 하더니 한 명이 바지를 걷고 바다 속으로 들어간다. “더 더 더목소리가 커진다. 무릎까지 물이 차니 얼른 나온다. 또 저희들끼리 어찌어찌 하더니 다른 학생이 들어간다.

이 애들에게 오늘은 추억거리가 될 것이다. 나는 초등학교 때 친구들과 추억이 없다. 학교가 멀었고 같이 다녔던 또래가 없었다. 선배들은 있었지만 잘 끼워주지 않았다. 학생들이 위험할까 한참을 서서 지켜봤다. 이들이 자라 객지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명절이나 휴가 때 고향에 내려와 오늘 일을 이야기 할 상상을 하는 사이 마음이 평온해졌다.

수산시장에서 식사를 했다. 코로나19가 아니면 아들딸네랑 같이 왔으면 좋았을 텐데,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남편이 마른 오징어를 애들에게 보내주자고 한다. 나는 반찬거리를 보내주자고 했다.

오징어를 사면서 나보고 자기 하는 일에 참견하지 말라고 한다. 내가 소나무 주운 것에 대한 반감인 것 같다. 무거운 것 들고 다니는 것 싫어 휴대폰도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 그런데 소나무를 버리라고 해도 버리지 않고 끝까지 들고 다니니까 미운가 보다. 그렇다고 반대한 것을 자기가 들어주기도 그렇고.

나도 빈정이 상했다. 사건말건 건어물집 밖에 서 있었다. 다섯 축을 샀단다. 아들, 아들네 처제, 사돈댁, 내 남동생, 여동생 몫이라고 한다. 아이고 바보씨, 사돈이, 내 동생들이 나이가 몇인데 오징어를 먹어? 임플란트 한 것 다 망칠 일 있어. 그리고 왜 딸 것은 안 사? 소리를 빽 질렀다.

자기가 생각해도 바보 같은지 처남 처제 것을 딸 주겠단다. 주소를 주고 부쳐달라고 했어야 하는데 들고 나왔다. “들고 가게?” “걱정 마 내가 들 거니까.” 다섯 축이나 되니 얼마나 무겁겠는가. 얼른 가게로 들어가 주소를 주고 싶었지만 남편 하는 짓이 미워 그래, 고생 좀 해 보시지.” 아무 말 없이 해변도로를 걸었다. 앞서 가던 남편이 얼마 못 가 손을 바꾼다. 나도 소나무 때문에 무겁다.

해변도로는 좋다. 바다는 우리 마음과는 상관없다는 듯 잔잔하기만 하다. 진정을 하며 평화를 찾으려 해도 남편이 바보 같다. 서대 고등어 조기 등을 보내주면 손자손녀들도 잘 먹고 며느리 딸도 반찬 걱정을 더니 얼마나 좋겠는가. 서울 손자손녀는 아직 어려서 오징어를 먹을 수나 있을는지.

생각할수록 밉다. 무겁게 들고 가는 게 고소하다. 어지간하면 남편이 먼저 말을 걸 텐데 말이 없다. 나도 말하고 싶지 않다. 기차 시간까진 넉넉하다. 해변을 따라 걷기엔 좋은 날씨 좋은 경관이다. 이놈의 짐만 없다면.

오동도 앞에 왔을 때 두 시간 이상 남았다. 오동도 구경을 하겠다고 하니 따라온다. 들어가는 중간에서 쉬겠단다. 내 소나무를 달라고 한다. “냅둬 내 것은 내가 들 테니까.” 말에 가시가 있다.

오동도에서 한 시간여 구경을 하고 나올 때다. 서너 살이나 되어 보이는 아이와 그 애의 엄마 아빠가 오고 있었다. 애기가 내 앞에서 갑자기 멈춰 섰다. 내가 무릎을 보호하기 위해 지팡이를 짚고 다닌다. “? 할머니 무릎 아파서. 무서워?” 자세를 낮추며 눈웃음을 보였다. 아이가 내게 절을 꾸벅한다. 애기엄마가 민망했는지 원래 애기가 인사를 잘 한다고 한다.

애기들은 영혼이 맑아서 세상을 훤히 본다고 하더니 아무리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심통난 내 얼굴이 보였나 보다. 지팡이가 무서운 줄 알았는데 화난 얼굴이 무서웠던 것이다. 웃어주니 인사를 하는 걸 보니. 무외시는 못 할망정 저 어린 것에게 공포심을 주어서야 어디에 쓰겠는가.

마음을 고쳐먹고 돌아오니 남편은 고개를 숙이고 졸고 있다. 택시를 타고 가서 엑스포역 물품보관함에 맡기고 오동도 구경을 가볍게 할 것인데. 원래 뒷북치기 선수인데 화가 났으니 오죽하랴.

왜 오징어 살 생각을 했냐고 물었다. 30대 초 울릉도 여행을 했다. 오징어를 샀는데 내가 포항까지 오는 배 안에서 한 축을 거의 다 먹었단다. 나는 기억도 없다. 그때 생각이 났고, 애들이 직장생활 하느라 욕보니 주말에 오징어로 맥주 한 캔씩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오징어랑 반찬거리랑 같이 보내 줄 생각은 왜 못했을까. 이것 아니면 저것, 한 가지 밖에 생각 못하는 바보이면서 나는 내 생각이 옳다고 고집을 부리는지.

2022.1.15


댓글목록

한판암님의 댓글

한판암 작성일

두 분의 알콩달콩한 여수 여행의 신경전과 심적 갈등의 묘사가 무척 재미있습니다. 그렇게 아름답게 사시는 부부의 진정한 사랑의 단면이 무척 달콤하고 닮고 싶습니다. 사는 동네가 다른 쪽인 때문일까요. 여태까지 살면서 여수는 두 번인가 가봤던 것 같습니다. 그중에 생각 나는 것은 유일하게 "오동도"네요. 늘 즐겁고 보람되시기를 기원하겠습니다.

해드림출판사님의 댓글

해드림출판사 작성일

늘 좋은 글 올려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