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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산딸기 꽃향기를 맡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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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래여 댓글 2건 조회 639회 작성일 22-06-06 10:31

본문

산딸기 꽃향기를 맡으며

       박래여


 

 뒤꼍 언덕배기 찔레덩굴은 봄이 도래하자마자 가장 먼저 잎눈이 피었었다. 그동안 가뭄이 얼마나 심했던지 잎눈이 피고 꽃을 피울 시기에 찔레덩굴은 누렇게 말라버렸다. 산딸기 덩굴은 그나마 견뎌내고 앙증맞은 흰 꽃을 피웠다. 예뻤다. 낮이면 벌과 나비가 날아들어 꿀을 빨았다. 그 산딸기나무도 어린잎이 누렇게 변해가는 중이다. 푸름으로 덮여야 할 언덕이 누렇게 변색한 채 봄기운을 회복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던 차 단비가 내렸다.


 두 어른은 요양원과 요양병원으로 모셨지만 잡음이 나온다. 시어른께서 사방천지 전화를 해 대신다. 요구사항도 많다. 집에서처럼 이것저것 챙겨달라는 것이다. 요양병원에는 개인 냉장고를 갖다 둔다면서 냉장고에 채워놓고 드실 간식을 챙겨오라는 뜻이다. 용돈도 드렸고, 한동안 드실 간식거리도 챙겨드리고 왔지만 삼촌에게 전화해서 말씀하시더란다. 몸도 제대로 못 가누는 노인이다. 정신도 오락가락하신다. 노인은 자식들 사이도 정 다 떼고 가시려고 작정하신 것일까. 노인의 무의식 자기애로 멍드는 것은 누굴까.


 빗방울의 무게에 뒤집히거나 축축 늘어진 나뭇가지의 푸른 잎들이 무거워 보인다. 숲에 들어 나무둥치 붙들고 흔들어버릴까. 내 마음도 같이 흔들어 옹이 지고 딱딱해진 응어리를 탈탈 털어낼 수 있으면 좋겠다. 평생을 두 어른에게 묶여 살아온 세월이 서글프다. 그리 안달복달하지 않아도 되었으련만. 내 욕심 챙기면서 넉장거리 부리면서 살아도 되었으련만. 시부모님 잘 모시겠다고 며느리노릇 잘 하겠다고 나를 없애고 산 세월이 서럽다.


 그러나 어쩌랴. 세월 이기는 장사 없다. 나도 노인이 되니 시어른처럼 편협해지고 아집만 느는 것 같다. 마음이 불편하면 표정에 나타난다. 맑은 얼굴빛으로 살아가고 싶은데 자꾸 어두워진다. 삼라만상은 거미줄처럼 촉으로 얽혀있다고 생각한다. 나쁜 마음은 나쁜 기운을 끌어 모우고 좋은 기운은 좋은 기운을 끌어 모은다는 끌어당김의 비밀에 공감한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나 양자역학 관계, 아이작 뉴튼의 물리학 이론에 대해서는 백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힘에 의해 끌어당김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인정한다.


 부부관계도 자석을 닮았다는 생각을 한다. 서로 닮은 사람과 부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반대성향의 사람이 만나 부부가 되는 것 같다. 부부가 같은 성향이면 서로 밀어내기 때문에 불꽃이 튀지 않을 확률이 높다. 물론 처음에는 서로 닮은 것에 끌릴 수 있으나 금세 식상할 것 같다.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부부가 평생을 살아가며 닮은꼴로 거듭나기 때문에 백년해로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 부부도 마찬가지다. 농부와 나는 반대다. 그 반대 성향이 서로를 끌어당겼던 것일까. 부부로 살면서도 밋밋할 틈이 없는 것도 가끔 부딪혀 불꽃이 튀기 때문은 아닐까.


 소설가 이외수 작가가 돌아가셨단다. 그동안 투병을 해 왔다는 것도 인터넷을 통해 알고 있었다. 이외수 작가의 작품을 어디서 처음 접했던가. 까마득한 날 어느 문학지에 실린 단편이 아니었나 싶다. 개싸움이야기였던 것 같은데 캐릭터가 독특했었던 기억이 있다. 그 외에 <꿈꾸는 식물>, <하악 하악>은 서재에 꽂혀 있다. 백 세 시대에 일흔 여섯이면 아까운 연세다. 죽음은 나이순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명치가 묵직하다. 갈 때가 되어 갔을까. 작가의 마지막도 가족에겐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죽음은 환자보다 가족이 더 힘들다는 것도 가족을 우선하기 때문은 아닐까.


 아흔 셋과 아흔 여섯의 두 어른 틈새에 끼어 삼십 수년을 살고 있는 우리 부부는 알게 모르게 지치고 금 간 자국이 많다. 금 간 자리에 때가 끼어 묵은 때가 딱딱하게 굳어버렸다는 것을 깨달을 때가 있다. 가끔 보수도 했다. 닦아도 보고 접착제를 붙여도 봤지만 금 간 자국은 메워지기보다 더 벌어질 공산이 커다. 남자와 여자의 차이일까. 변할 수 없는 타고난 성격 탓일까. 나이 탓일까. 서로 안쓰러워하고 위로하면서 남은 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머리는 아는데 가슴은 모른다. 자존심 문제일까. 자존감 문제일까. 배려하고 이해하는 마음의 저변에 깔려 있어야 할 사랑이 없어진 것일까.


 우리를 힘들게 하던 두 어른을 병원으로 모셨으니 서로 홀가분하고 편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왤까. 이미 엎질러진 물은 주워 담을 수 없다는 속담을 생각한다. 사람의 감정이 그릇에 담긴 물 같아서일까. 부부가 각자도생을 생각한다면 원인은 뭘까. ‘나는 당신에게 어떤 사람인데?’ 그가 물었다. ‘남편이지 뭐내 대답에 허점이 있나.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고 하지만 듣기 좋은 소리다. 부부싸움을 할 때마다 난 상처자리는 나이테 감기면서 아물기는커녕 덧나기 일쑤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노인 대열에 들어서면서가 아닐까.


 당신은 절망적이 될 때 어떤 생각이 들던가. 힘들게 버티고 오기로 살아왔다고 느낀다면 자존심 문제일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아 각자도생을 해야지. 더 늦기 전에 용단을 내리는 것이 옳아. 남은 인생이 아깝잖아.’ 그래야 할까. 아니면 반면교사인 두 어른의 삶을 지켜본 나머지로 이보다 더 힘들 때도 있었잖아. 그때도 살았는데 지금이 어때서. 그냥 살아. 다들 사니 못사니 하면서 살아.’ 그렇게 다독거려야 하는 것일까. ‘미움도 사랑이라 하더라.’ 그러면서 살아야 할까. ‘인연은 인연이 다하면 그만이라는 불가의 말씀을 새긴다. 우리 인연은 어디까지 일까. 서로에게 절망하고 위기의식을 느꼈던 적이 몇 번이였든가. 아직 부부로 사는 것을 보면 우리 인연도 질긴 인연일지 모르겠다.


 단비를 맞고 있는 산딸기나무 앞에 섰다. 가랑비가 내리는데도 꽃을 찾아드는 까만 호박벌과 노란 일벌이 서로를 경계하며 꽃과 꽃 사이를 날아다닌다. 웅 웅 웅 날갯짓 소리 요란하다. 먹고 살기 위해 저럴까. 두 아이 공부 뒷바라지에 허덕이며 먹고 사는 문제에 집착했을 때는 돈 문제가 있었지만 가슴이 차갑지는 않았다. 나는 오랜 세월 시부와 시모의 시소게임에 지쳐가던 중이었다. 그러다가 3년 전 봄, 뇌경색으로 쓰러진 시모가 도화선이 되었다. 시부모 모시는 일로 생채기가 났다. 온기가 흘러야 할 부부 사이에 냉기가 흘렀다. 극한지점까지 가지 않으려고 서로 평온을 유지했지만 사소한 한 마디에 불꽃이 튀었다.


 두 아이가 존경해 마지않았던 부부사이가 변하기 시작했다. 두 아이는 알았다. 겉으로는 평온을 유지하지만 부모의 불편한 관계를 감지했다. 지난해 여름이다. 병원에서 40일 만에 퇴원하고 집에 온 뒷날이었다. 사소한 것으로 남편의 언성이 높아졌고 아들과 딸은 현장에 있었다. 아들은 담담하게 말했다. ‘엄마, 이혼하소. 아버지랑 살면 엄마만 더 힘들어지겠다.’ 이혼, 말은 쉽다. 막상 결단을 내릴 수 있는 마음준비는 쉽지 않다. 그때 생각했다. 홀로서기도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일 년 후가 된 지금은 어떤가. 서로 안쓰럽게 바라본다. 심각해지지 않는 나 자신이 이상하다. 나는 산딸기 꽃 한 송이를 따서 코에 댄다. 향긋하다.

 

댓글목록

한판암님의 댓글

한판암 작성일

많은 생각을 거듭하면서 겨우 다 읽었습니다. 살면서 누가 되었든 서로에게 상처나 옹이가 박히는 아픔은 주 않아야 하는데.... 부부가 무엇인가도 새삼스럽게 다시 생각해 봤습니다. 그리고 남의 일 같지 않아 나도 가족에게 짐이 되거나 상처를 주는 업(業)을 짓지 않았으면 하고 빌기도 했습니다. 혹시나 가족이나 아이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게 하고 싶지 않아 얼마  보건소에 가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라는 것도 직성해  등록했지만 다 부질없어 보일 뿐 입니다. 힘 내세요!

박래여님의 댓글의 댓글

박래여 작성일

어머님 생각을 자주 해요. 주중 언제든 다녀옵니다. 지척에 있는 요양원으로 모셨더니 좋아요. 오늘은 생신잔치를 한다기에 쑥떡을 한 박스 맞춰 갔지요. 우선 어머님께 몇 개 접시에 담아드렸더니 참 맛나게 드셨어요. 문제는 시아버님입니다. 퇴원해서 집에 오시고 싶다는데. 24시간 간병인이 붙어 있어야 하고, 수시로 수혈도 해야 하고, 카테트도 끼고 계시는데. 여전히 마음이 됩니다. 편하지 않아요. 몸은 좀 편해졌지만 마음은 더 힘들어요. 어머님이 고마운 것은 적응 잘 하시니까 자주 뵈어도 좋은데. 아버님은 뵈러 가기가 겁나요. 집에 오겠다고 화를 부리시니. ㅋ
 선생님, 잘 죽는 방법 요원하지 싶어요. 저도 지난해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카드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