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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수목원의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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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윤복순 댓글 2건 조회 636회 작성일 22-06-18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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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목원의 아침

윤복순

 

달포쯤 전이다. 새벽마다 운동을 나가던 공원이 이런저런 개보수 공사를 시작했다. 날이 따뜻하고 해도 일찍 뜨니 아침 운동 나오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원대 수목원으로 장소를 바꿨다. 공원은 아파트 바로 뒤로 큰 길만 건너면 되지만 수목원은 30분을 걸어가야 한다.

5월 초 수목원은 싱그러움 그 자체였다. 새벽엔 사람이 없어 나의 독차지다. 작약꽃이 맞이해 주고, 붉은칠엽수꽃이 큰 소리로 저 좀 봐 달라 하고, 소영도리꽃 가막살나무꽃 불두화 등등 꽃 잔치도 한창이었다. 장미가 바통을 이어 받았다. 양팔을 벌리고 심호흡을 하며 콧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공기, 나무, 조경, 꽃 등 감사합니다.’를 한 백 번쯤 한다.

장미정원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다. 비가 오지 않아 송알송알 맺힌 꽃봉오리를 피워내지 못할까 마음을 졸였다. 생명력은 위대해 가뭄 속에서도 한 송이 두 송이 꽃을 피워냈다. 얼마가지 못해 시들어 가고 맺힌 송이들은 개화를 못하고 있었다. 살면서 죽으란 법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숨이 막혀갈 즈음 조금이지만 비가 내렸다. 그 새를 놓치지 않고 온 밭의 장미가 꽃을 피워냈다. 감사합니다.’를 백 번쯤 했다.

장미정원 옆으로 연 방죽이 있다. 연 잎도 키를 키우고 잎을 넓혀갔다. 아직은 장미에 눈을 뺏겨 연은 찬밥신세였다. 위쪽은 백련이고 아래쪽은 홍련이다. 백련이 빨리 자라는지 백련지는 거의 바닥이 안 보일 정도다.

화무십일홍이라 장미도 시들기 시작했다. 밤새 비가 조금 내린 다음 날이었다. 연잎의 표면장력으로 밤에 내린 비가 연잎위에 다이아몬드 전시를 해 놓았다. 크고 작고 넓은, 어느 유명 디자이너도 못 해낼 멋지고 다양한 보석 전시를 연잎 마다 하고 있다. 환호성이 터지고 박수가 절로 쳐졌다. 이런 아름다움을 보여주다니 감사합니다.’를 또 백 번쯤 했다.

이제 연지가 대세가 되었다. 비가 오지 않은 날에도 아침이슬이 만들어 놓은 진주들이 작고 앙증맞은 보석잔치를 하고 있다. 요 며칠 작은 비가 소나기처럼 자주 내리니 연지엔 보석들이 연잎마다 가득하다. 해가 이 물기를 말리기 전 인 이 아침에만 볼 수 있는 장관이다. 나 혼자이니 마구 흥분하고 박수치고 소리 지르고 금메달이라도 딴 것 마냥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 행복합니다.’를 외쳤다. 행복함을 주체할 수 없어 난리브루스를 쳤다.

이때 큰 새 한 마리가 후드득 날아올랐다. 황새, 백로, 두루미, 해오라기? 떠오르는 대로 이름을 불러줬다. 아침식사 사냥을 하러 나온 모양인데 내가 호들갑을 떠니 빈손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 미안, 미안 몇 번을 말했지만 한 번 날아간 새는 돌아오지 않았다. 내일 부터는 속으로만 좋아해야겠다.

연잎은 하루가 다르게 자란다. 연지의 물이 자꾸 자꾸 줄어든다. 며칠 비가 내렸지만 해갈에는 어림없다. 요즘은 보석도 보석이지만 새 때문에 연못에 간다. 장미정원을 돌면서 멀찍이 보니 그 새가 먹이 사냥을 하는지 조용히 서 있다. 매일 아침 이곳으로 먹이 사냥을 왔던 모양인데 내가 꽃에 눈이 팔려 보지 못했던 것 같다.

이 녀석의 이름은 무엇일까. 황새는 아니다. 흰색이 아니니까. 흑두루미라고 하기엔 회색에 가깝다. 그렇다면 재두루미? 좀 커 보인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왜가리에 가깝다. 왜가리는 원래 철새였는데 텃새가 되었다고 한다. 집단 번식을 하며 4월 중순부터 5월 중순 사이 한배에 서너 개의 알을 낳고 한 달여 알을 품어 부화하면 두어 달 암수가 함께 새끼를 키운다고 한다.

어느 날 제법 큰 물고기를 물고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 “네 각시 주려고 가지고 가니?” 말을 걸었는데 새끼 주려고 그랬던 것 같다. 왜가리는 자신의 영역이 확실해 다른 놈이 자신의 영역을 침입하면 피터지게 싸워서라도 기어이 쫒아낸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 녀석이 매일 연지에 온 것이 맞다.

꽃보다 더 예쁜 녹음에 빠져 메타세콰이어길, 은행나무길, 이팦나무길, 벚나무길, 소나무길 단풍나무길 등을 걷느라 연지를 지나치고 말았다. 출근 때문에 집에 돌아와야 할 시간이다. 늦었는데 아무래도 그 애가 오늘은 할머니 안 나오나.” 걱정하고 있을 것 같아 정신없이 가보니 정말 연지에 와있다. ‘안녕, 안녕 나 왔다. 할머니 이상 없음.’ 인사를 하니 안심이 되는지 날아올랐다.

매일 아침 연지를 기웃거린다. 그 녀석을 보기 위해서다. 못 만나는 날도 있다. 먹이사냥 성공률이 대여섯 번에 한 번 정도라는데 연못이 크지 않을 뿐 아니라 가물어서 물도 별로 없다. 먹이는 잉어 매기 가물치 개구리 뱀 등이라는데 그런 것들을 볼 수가 없다. 어제 먹이사냥을 못해서 안 오는 걸까.

수목원 가는 길에 조그만 하천이 있고 주변의 논엔 모두 모내기가 끝났다. 하천 물에선 악취가 난다. 얼굴이 찡그려져 다른 길을 택했다. 밭을 지나 논길로 접어드니 논에서 그 녀석이 날아오른다. 들판이 넓어서 날지 않았으면 보지 못했을 것이다. 하루 못 보았다고 녀석도 반가웠나 보다.

연꽃봉오리가 서너 개 올라와 있고 한 송이는 붉게 피었다. 수목원은 날마다 변신중이다. 왜가리는 보이지 않았다. 정말 연못에 먹잇감이 없나 걱정이다. 오늘도 안 보이면 어떻게 할까. 조마조마 하는 마음으로 연못에 가니 목을 길게 빼고 기다리고 있다. 짝꿍까지 데리고 와서.

짝꿍은 나를 보고 날아가고 그 녀석은 그 사이 정이 들었다고 좀 더 가까이 갈 때가지 있다가 건너 편 소나무 위로 날아가 오래 동안 날개를 팔락거린다. 저도 나를 기다렸다고 건강하게 걸어오는 모습을 보았으니 안심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이 할머니 아무 일 없으니 어서 네 새끼들한테 가봐.’ 그 녀석의 날개 짓만큼이나 크게 나도 손을 흔들었다. ‘내일 또 봐.’

6월 수목원의 아침이다.

 

2022.6.13

 

 

 


댓글목록

한판암님의 댓글

한판암 작성일

저희 동네엔 거닐만한 수목원이 없답니다. 하지만 지난해 마산항구 해안가 3~4 킬로 미터를 해변 공원으로 개발해 주민들에게 돌려줘 많은 사람들이 새벽부터 걷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답니다. 그런데 저는 바닷가에 시멘트 포장된  '3.15해양공원'이 성에 차지 않아 몇 번 걷다가 20여년 꾸준히 걸어왔던 등산로를 일주일에 5회정도 오르내리고 있답니다. 대충 10여 킬로 미터로 3시간 안팎의 시간이 소요 되지요. 요즘엔 더워서 새별 5시쯤되면 집을 나섰다가 8시무렵에 돌아 오지요.

윤복순님의 댓글

윤복순 작성일

왜가리는 거의 매일 만나요. 그 연못에 연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홍련이 먼저 피고, 오늘은 백련도 두 송이 피었어요.
꽃봉오리가 많아 월요일은 장관을 이룰 것 같습니다.
큰 나무들은 잎이 무성해 햇빛을 다 가려줘 더욱 걷기 좋구요.
아침마다 수목원 가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더위에 몸조심 하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