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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방랑시인 김삿갓의 단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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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판암 댓글 0건 조회 869회 작성일 22-06-28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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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시인 김삿갓의 단면


너무도 널리 알려진 김삿갓(1807~1863) 얘기이다. 안동김씨로 본명은 병연(炳淵)이며 삿갓을 줄곧 쓰고 다녔다는 이유에서 김삿갓 또는 김립(金笠)이라고도 부른다. 게다가 “죽장에 삿갓 쓰고 방랑 삼천리 흰 구름 뜬 고개 넘어가는 객이 누구냐.....”라는 대중가요로 친숙하게 각인된 그의 일부 단편적인 흔적과 만남이다.


병연이 코흘리개 시절 그의 조부인 익순(益淳)이 선천부사(宣川府使)로 재임하던 시절 ‘홍경래가 주동했던 농민전쟁(1811)’이 발발했다. 이때 하위직인 가산(嘉山)군수 정시(鄭蓍)는 목숨을 바쳐 대항했으나 선천부사였던 익순은 농민군에게 투항하고 부역(附逆)을 했다. 그 이후 농민전쟁이 평정되고 병연의 조부는 모반대역죄로 참형을 당하고 멸문지화의 순간을 맞았다. 그렇지만 다행스럽게도 형벌은 조부에게 국한되었다. 조상이 돌봤던지 가족 모두가 줄줄이 종인 천민으로 추락하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가까스로 면했다. 어린 병연은 자신의 처지를 전혀 모른 채 어머니의 눈물겨운 보살핌 속에서 어렵게 성장하면서도 열심히 학문에 몰두하다가 스무 살에 이르렀을 무렵 과거에 응시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청운의 꿈을 이루고픈 욕망에서 마침내 향시(鄕試)에 응시했다. 그 때 과장(科場)에 내걸린 시제(試題)가 “가산군수 정시의 충절을 논하고, 김익순의 죄가 하늘에 이를 정도였음을 통탄하라(論鄭嘉山忠節死 嘆金淳益罪通于天)”이었다. 시제를 지그시 응시하며 생각에 잠겼다가 곧바로 신들린 듯 일필휘지로 도도한 강물처럼 막힘없이 써 내려갔다. 그 시작에서부터 이어지는 8개 문구이다.


대대로 성은을 입은 신하 김익순은 듣거라(一爾世臣金益淳)
정공(가산군수 정시(鄭蓍))은 경대부에 불과했다(鄭公不過卿大夫)
그런데 당신은 이릉이 오랑캐에게 항복한 꼴이 되었구려(將軍桃李隴西落)
정공의 공명은 충신열사 중에서도 서열이 으뜸이 되었느니라(烈士功名圖末高)
시인은 이런 일에 분개하지 않을 수 없기에(詩人到此亦慷慨)
칼을 어루만지며 가을 물가에서 슬픈 노래를 부르노라(撫劍悲歌秋水溪)
선천(宣川)은 자고로 대장이 지켜온 큰 고을이었는데(宣川自古大將邑)
가산보다 앞서 의(義)로 지켜야 할 곳이 아니었던가(比諸嘉山先守義)


이런 도도한 흐름과 매서운 꾸짖음 같은 질책으로 시작해 끝맺었다. 당연히 장원급제했다. 집에 가서 어머니에게 자랑스럽게 그 사실을 알려드렸다. 어머니는 그제야 숨어 살아야 했던 아픈 가족사를 조곤조곤 들려줬다. 그 순간부터 오랜 갈등과 번민을 거듭하다가 끝내 가족과 이별하면서 모든 걸 내려놓고 죽장망혜(竹杖芒鞋)에 걸망하나 짊어지고 죽을 때까지 세상을 떠돌며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하는 떠돌이인 김삿갓 즉 김립의 길을 걸었다.


단순히 삿갓 쓰고 주유천하하던 천재 시인 혹은 대기인(大奇人)정도로 인식하기 쉽다. 하지만 자기 할아버지를 대역 죄인으로 조롱하고 질타했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어 세상을 등진 채 떠돌아야 했던 섧고 애통한 삶이었다. 그렇게 정처 없는 방랑자로서 세상을 기웃대다가 때로는 절경이나 아름다움을, 때로는 역겨운 세상사를 맘껏 비틀고 조롱하며 풍자와 해학이 넘쳐나는 시를 남긴 미치광이 같은 기행(奇行)이 그의 전부가 아니었다. 그의 시를 음미할수록 걸출한 문학성에 가려진 인간적인 고뇌와 아픔이 절절하게 마음속 깊이 파고들어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게 만드는 마력에 무척 놀랐다.


세상 모두를 멀리하고 그림자처럼 온 나라 구석구석을 떠돌았던 때문에 오욕칠정(五慾七情)*에 초탈했을지라도 그 역시 보통 사람과 다를 바 없는 인간이었던가 보다. 허접한 인연에 연연하는 필부들이나 범했을 법한 흔적이 눈에 띄어 신기하고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그 시절 노류장화(路柳墻花)*가 암묵적으로 용인되던 사회로 그도 이런 문화를 비껴가지 못했던가 보다. 색주가의 여인이었을 법한 “가련”이라는 여인과 첫날밤에 운우(雲雨)의 정을 나누며 주고받은 것으로 유추되는 “초야(初夜)”라는 시가 그 증좌이다. 김삿갓이 처녀성을 의심하는 투의 음담패설에 가까운 말장난에, 옴짝달싹 못하게 대거리한 “가련”의 응대가 백미이며 압권처럼 여겨짐은 음흉스런 심리의 발로일까.


“초야(初夜)”에서 먼저 김삿갓이 흥얼흥얼 읊어댄 시구(詩句)이다.


털이 깊고 속이 넓은 것을 보니(毛深內闊)
필시 딴 사람이 먼저 지나갔도다(心必他人)


그 말에 즉각적으로 응답한 “가련”의 기지가 번뜩이는 대구(對句)이다.


개울가 버들은 비가 오지 않아도 길게 자라고(溪邊楊柳不雨長)
뒷마당 알밤은 벌이 쏘지 않아도 벌어지네(後園黃栗不蜂坼)


김삿갓이 남긴 수많은 시는 어두운 밤하늘에 반짝반짝 빛나는 샛별 같은가 하면, 힘들고 지친 삶에서 정갈한 석간수 한 모금 마시는 청량감을 주기도 한다. 이런 빼어난 시인이 험난한 인생길에서 풍자와 해학이 넘쳐나는 작품이 아닌 정통적인 문학에 몰두했다면 어떤 족적을 남겼을지 모르겠다. 한편 성현군자이거나 대덕고승이 아니면 누구도 본성에서 자유롭지 못했으리라는 생각을 그의 “초야”라는 시에서 넌지시 엿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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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욕칠정(五慾七情) : 불교  용어로서 사람의 다섯 가지 욕망과 일곱 가지 감정을 의미한다. 여기서 오욕은 눈, 코, 귀, 혀, 몸의 다섯 가지 감각 기관 오관(五根)이 각각 빛(色), 냄새(香), 소리(聲), 맛(味), 만지는 느낌(觸)의 오경(五境)에 집착하여 야기되는 다섯 가지의 욕망으로써 재물욕(財物慾), 명예욕(名譽慾), 식욕(食慾), 수면욕(睡眠慾), 색욕(色慾) 등을 이른다. 한편 칠정은 사람의 오관을 통해 일어나는 일곱 가지의 감정인 희(喜 :기쁨(정신적)), 노(怒 : 노여움), 애(哀 : 슬픔), 낙(樂 : 즐거움(육체적)), 애(愛 : 사랑), 오(惡 : 미움), 욕(欲 : 욕망)을 뜻한다.

* 노류장화(路柳墻花) : 아무나 쉽게 꺾을 수 있는 길가의 버들이나 담 밑의 꽃이라는 뜻으로서 창녀나 기생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유의어로 기생이나 창녀가 쓰인다.

 

2022년 6월 9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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