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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봄이 오는 길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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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판암 댓글 2건 조회 971회 작성일 22-07-11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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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는 길목에서


벌써 봄이 내 곁까지 파고 들다니 화들짝 놀랐다. 며칠 전까지 춥다고 웅크린 채 손이 시려 양손을 마주 잡고 비비며 등산길을 오르내렸다. 게다가 마음까지 꽁꽁 얼어붙어 계절의 봄은 아직 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어제 등산을 다녀오다가 아파트 경내 외 돌아진 곳으로 길머리를 틀고 걷다가 깜짝 놀랐다. 언제 피었는지 매화와 산수유가 만개하여 봄바람에 하늘하늘 마냥 평화로웠다.


어제와 오늘 유난히 따스해 되레 햇볕이 부담스러웠다. 오가는 등산길에서 가능한 숲길을 찾아 숨어드는 자신이 어이없어 쓴웃음을 지으며 주위를 둘러봤다. 저 멀리엔 아지랑이가 일렁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사실 오늘이 제20대 대통령 선거 투표일이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우려해 미리 사전투표를 했던 때문에 신경 쓰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등산을 즐겼다.


봄기운이 완연하다. 그래도 아직 나뭇가지에 새잎이 피어나고 고목의 우듬지에 새순이 돋으려면 한동안 다소곳이 기다려야 할 분위기이다. 비교적 일찍 새잎이 돋는 찔레꽃 덩굴도 겨울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는지 파릇한 모습을 찾기 어려운 지금이다. 또한 봄이 오면 어떤 나무보다 서둘러 ‘고양이 꼬리 모양의 수꽃’을 피워 미상꽃차례(尾狀꽃次例) 즉 미상화서(尾狀花序)를 이루는 오리나무의 신기한 자태마저도 진득하게 뜸을 들여야 할 모양이다. 보통 사람들이 미상화서라고 호칭하는데 비해 전문용어로는 유이화서(葇荑花序)라고 부른단다. 이런 절기적인 특성 때문일까. 스무 해 남짓 오가던 등산로 초입의 진달래 군락지 역시 아직도 잠에 취했는지 부산한 낌새가 없다.

 

봄은 분명 희망이고 축복이며 역동적인 생의 향연 시발점이다. 어김없이 꽃이 피고 새싹과 새순이 돋는가 하면 들짐승이나 새들이 짝 짓고 새끼를 치는 사랑의 계절로 탄생의 고고한 함성이 넘쳐나는 계절이다, 이런 연유에서 높고 낮음이나 부자와 가난을 비롯해서 알고 모름과 관계없이 자기의 자리와 위치에서 새로운 세상과 꿈을 그리는 희망의 시절이리라. 봄을 사람에 비유한다면 무한한 내일을 꿈꾸는 청소년에서부터 이제 막 사회생활에 첫발을 내디딘 풋풋하고 진취적인 청춘들이 아닐까 싶다.


언제 어디서 만나도 싱그러운 청소년이나 우리의 미래를 책임질 젊은 지성인을 위시해서 풋풋한 사회 초년생들의 꿈과 희망이 어우러지는 아름답고 활기찬 모습이 더할 수 없이 믿음직하고 든든하다. 순진 발랄하고 청초한 초등생, 떠꺼머리총각 냄새가 물씬 풍기며 때로는 시큼 달콤해도 제 몫을 해내는 중고교생인 청소년, 젊은 지성을 대표하는 대학생, 내일의 우리나라를 이끌 재목으로 자리 잡을 사회 새내기 등이 그들이다. 밝고 맑으며 세속에 물들지 않은 청청한 그들에게서 장엄하게 솟아오르는 태양의 기상과 휘영청 밝은 보름달의 꽉 찬 모습이 엿보여 우리의 내일은 양양하지 싶다.


젊음을 봄이라면 노년은 겨울 언저리와 비견될 수 있지 않을까. 왠지 푸석푸석하고 생기를 잃은 처연함에 따른 생각이다. 장수시대의 도래와 함께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덕담을 한다. 그러나 설 자리를 찾기 어려운 처지로 전락해 동정의 대상으로 추락한 게 아닐까 하는 자괴감을 떨치기 어렵다. 운이 좋은 축들은 노란 조끼를 걸치고 길거리 쓰레기를 줍거나 잡초를 뽑는 공공일자리를 꿰차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기회마저 얻지 못하는 경우 폐지나 재활용품 수집으로 날이 새고 저무는 서러운 이들도 부지기수이기에 불뚝대는 구시렁거림이다. 뚜렷한 묘책이 펼쳐지지 않는 한 노인은 우리사회의 무거운 짐이라는 현실을 벗어나기 어려운 지금이다.


우리 동네 아파트 단지의 자투리땅에 조성된 조각공원 몇 군데가 있다. 사시사철 노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우두커니 앉아 소일하는 장소이다. 그런 때문에 날씨가 추운 겨울이나 무더운 여름엔 무척 안쓰럽다. 늘 그렇게 생각하고 지나쳤는데 어제는 상당히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했다. 완연한 봄날이라고 하지만  야외에 홀로 앉아 식사를 할 날씨가 아니었다. 그런데 등산을 마치고 돌아오다가 아무도 없는 텅 빈 조각공원의 긴 의자에 웬 할머니 한 분이 혼자 앉아서 당신이 집에서 가지고 오셨을 점심을 들고 계셨다. 집에 혼자 갇혀있는 게 답답해서 손수 점심 도시락을 가지고 나오셨을까 아니면 누군가가 외출하도록 부추기지는 않았을까. 믿겨지지 않아 멀찍이서 숨을 죽이고 지켜보다가 대응책이 마땅찮아 발길을 재촉해 집으로 향했는데 여태까지도 마음이 무겁다. 따스한 봄이 오는 계절이다. 그렇지만 그런 할머니들에게도 진정 따스한 봄이 곁으로 다가올까.


봄이 오는 길목에서 내일이면 누군가가 새로운 대통령으로 탄생한다. 여야를 막론하고 마구 쏟아냈던 선심성 공약이었을지라도 꼭 지켜 약자든 강자든, 배움이 많고 적든,  유식하든 무식하든, 재산이 많고 적든, 나이가 적든 많든, 서든 동이든, 여든 야든 상관하지 않고 모두에게 공평한 정치를 펼쳐 태평성대를 이루기를 소망한다. 일찍이 예기(禮記)의 공자한거편(孔子閒居篇)에서 이르는 삼무사(三無私)가 불현듯 떠올랐다. “하늘은 사사로이 덮어줌이 없고(天無私覆), 땅은 사사로이 실어줌이 없고(地無私載), 해와 달은 사사로이 비춰줌이 없고(日月無私照)”. 곱씹고 또 곱씹어 봐야 할 일깨움을 다 함께 되새겨 보면 어떨까.


현대작가, 제12호, 2022년 6월 25일
(2022년 3월 9일 수요일 오후 3시 55분)


댓글목록

장은초님의 댓글

장은초 작성일

선생님의 글을 읽으니불과 석 달 전인데 많은 시간이 흐른 것 같습니다.  새봄을 새세상을 희망했던 봄입니다. 날마다 산에 오르면서 돌무더기에 돌 하나를 괴며 이런 간절한 마을을 보탰더랬습니다.
두고 온 그 산의  소나무. 돌무더기. 소나무, 청설모,가 잠자리에 들면 눈물나게 그립습니다.  정든 것과의 이별이 너무 아픈 날들입니다.
다시 돌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살아야겠어요.
선생님 늘 건강 잘 챙기십시오^^

박래여님의 댓글

박래여 작성일

저도 혼자 밥 먹을 때는 양푼에 밥 비벼 마당의 느티나무 아래 돌 위에 앉아 먹거나
쪽마루에서 다리 덜렁거리며 먹어요. 새들과 개미에게 밥풀이나 라면 줄기 던져 가면서요.^^
후덥지근한 여름 잘 보내십시오.^^